병원 통역을 하다보면 참 많은 환자들을 만나게 된다. 또 어느 한 병원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각종 병원의 다양한 분야를 다니기 때문에 잡다한 지식이 쌓여 돌팔이 의사 수준이 된다. 예를 들어 심한 땅콩 알러지가 있는 사무실 직원과 대화를 하면 "에피펜은 항상 구비하고 다녀야 한다"고 점잖게 충고를 한다. 고혈압이 있는 사람과 고혈압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침이 심하다는 말을 듣게 되면 "라이시노프릴이라는 약을 복용하는 것이 아니냐? 그 약의 부작용 가운데 하나가 잔기침인데..."라는 말이 자동으로 툭 튀어나온다. 물론 이러한 잡지식들은 의사 앞에서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통역의 의무는 의사와 환자의 말을 전달해주는 것 뿐이니 말이다. 그냥 어깨 너머로 배운 지식을 지인들 앞에서 조금씩 과시하는 정도이다. 며칠 전, 어느 종합병원에서 백내장 수술을 통역했다. 백내장 수술은 수십번 넘게 참관했기 때문에 내게는 상당히 익숙한 수술이다.

     나이가 상당히 많은 할머니였는데, 처음 인사를 하며 "통역입니다"하고 소개를 하니, "잘 부탁혀요." 하신다. "나가 조금 떨리는디..."하며 긴장을 하셔서 "긴장할 거 하나두 없구먼요."하니까 "전라도 사람이여?" 하신다. "아녀요. 그래도 할매가 전라도 말 하니까 지도 할랑가요."하니 할머니가 큭큭큭 웃는다. 수술을 앞두고 긴장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긴장을 풀어주는 것은 통역의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이든 할머니가 벌벌 떠는 것을 뻔히 보고만 있기도 그래서 계속 말을 걸어준다. 이런 얘기도 하고, 저런 얘기도 하면서 수술 준비에 들어간다. 백내장 수술은 영어로 cataract surgery라고 하는데, 혼탁해진 수정체를 제거하고 인공 수정체(IOL)로 교체하는 간단한 수술이다. 수술 시간은 보통 15분에서 30분을 넘기지 않기 때문에 외래 수술로 잠깐 수술을 받은 후 바로 귀가해 집에서 쉬다가 보통 24시간 후에 다시 병원에 와서 의사가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할머니가 어떻게 수술을 하는지 물으면 잠시 멈칫하게 된다. 할머니가 알아듣게 간단히 설명하려면 이렇게 하면 된다. "일단 아주 예리한 칼로 눈알을 푹 찌른 다음, 갈고리로 눈알을 박박 긁고, 작은 진공청소기 같은 걸로 긁어낸 눈알을 빨아들인 다음 새 눈알을 넣으면 되요. 아주 간단한 수술이죠." 끔찍하게 들리지만, 조금 더 점잖게 표현하면 이렇게 하면 된다. "수술의 전 과정은 현미경을 이용해 세밀하게 진행됩니다. 일단 집도의가 각막이나 각막 주변을 아주 미세하게 절개한 다음, 아주 가느다란 도구를 삽입해 혼탁한 수정체를 분해한 다음 제거합니다. 수정체를 완전히 제거한 후에 동일한 절개 부위를 통해 인공 수정체인 IOL를 조심스럽게 밀어넣어 영구적으로 고정시킬 위치에 놓으면 됩니다." 물론 눈알을 빨아들인다는 말은 과장이다. 눈동자 위에 있는 수정체만 제거하는 것이니 말이다. 웃자고하는 말이다.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는 안약으로 넣은 마취제에다 작은 진정제 한알을 복용하자 계속 정신이 혼미해지는 모양이다. 백내장 수술을 진행하던 의사가 뜬금없이 "한국어 노래 하나만 불러줘요"한다.  순간 내 귀를 의심해, "뭐라고요?" 하고 반문한다. 의사는 "한국어 노래 하나만 불러줘요"하고 다시 반복한다. "농담이죠?" "아뇨. 진심이에요. 할머니가 정신이 없으니까 노래 불러줘요."하고 의사가 진지하게 말한다.  통역생활 10년에 수술실에서 노래를 불러본 적은 처음이다. 잠시 당황했지만, 70넘은 할머니가 좋아할 만한 한국노래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니 언뜻 떠오르는 노래가 '아리랑'이다. 에헴... 목을 가다듬고 천천히 노래를 부른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혹자는 아리랑이 남 잘되는 꼴을 못보는 한국인의 고약한 심보를 나타내는 곡이라고 비꼰다. 멀리 가는 님에게 잘 살라고 축복하지는 못할지언정 발병이나 나라고 악담을 퍼붓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노래에서 버림을 받아도 차마 붙잡지 못하고 멀리 못가 하다못해 발병이라도 나서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여인이 여린 감성이 읽혀진다. 정말 사악한 사람이라면 아예 떠나지 못하게 부엌칼을 가지고 나와서 떠나는 님의 등 뒤에 칼이라도 꽂아야 하는 것 아닌가.  

    타국으로 이민와서 살다보면 한국 노래, 특히 아리랑 같이 아주 태고적 느낌이 나는 전통곡은 거의 부를 일이 없다. 하지만 한국 노래 하면서 언뜻 떠오르는 곡이 아리랑인 것을 보면 내 정서 깊숙한 곳에는 아리랑이 한국적 뿌리로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 모양이다. 아리랑을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부른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첫번째는 2000년대 초에 태국에 갔을 때였다. 치앙마이에서 여행객들과 같이 트래킹을 했는데, 3일간 정말 죽을 고생을 하며 정글을 헤치고 산을 오르던 터라 어느 정도 끈끈한 동지애가 생겨있어서 그날 밤 파티는 정말 화기애애했다.  태국인 가이드가 "각자 자기 나라 노래 한곡씩 부르자"고 제안했다. 나와 내 친구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백인들이었는데, 모두들 난색을 표했다. 그래도 태국인 가이드가 계속 밀어부치자 결국 한명씩 나와서 자기 나라 전통 노래를 했다. 우리 차례가 되었는데, 친구와 함께 고민끝에 부른 것이 아리랑이었다. 수술실에서 아리랑을 부르며 갑자기 그때 기억이 오버랩되었다. 조용한 수술실에서 울려퍼지는 아리랑은 확실히 그때의 느낌과는 달랐다. 촌스럽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사랑하는 님을 그렇게 떠나보내야 했던 그 여인의 슬픔이 뇌리를 통해 전해졌다. 노래가 끝나자 간호사들과 의사는 "너무 좋다"고 감탄을 한다. 의사가 "또 다른 노래를 불러달라"고 보챈다.  손사래를 쳤지만, "한곡만 더 불러달라"고 자꾸 요청한다. 다시 목을 가다듬고 이번에는 '고향의 봄'을 부른다. 다음부터는 수술실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면 통역비를 더 올려받아야겠다. 가수를 불렀으면 출연료를 내야하지 않을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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