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언니는 깨끗함에 집착하는 결벽증을 가지고 있다. 언니네는 형부가 퇴근을 하고, 조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장 먼저 현관 옆에 있는 욕실로 들어가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 털어서 빨래바구니에 넣고, 샤워까지 해야만 집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시스템이다. 현관 신발 벗는 곳 바로 옆에 위치한 이 욕실에서 일단 씻지 않으면 아무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이 규칙은 미국에서 10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필자의 가족들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집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필자의 식구들은 현관문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차례로 씻은 뒤, 언니가 내어준 옷을 입고서야 거실에 앉을 수 있었다. 직계가족 외에는 집안 출입은 최대한 제한된다. 그러나 일년에 두어 번 정도 집에 손님이 오는 일이 있는데, 그때마다 언니는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청소를 해야 한다. 문손잡이에서부터 그 사람이 디뎠던 곳곳마다 걸레질에, 소독제 용액을 꼼꼼히 뿌린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언니 집에 가면 언니가 청소한다고 오히려 더 힘들까봐 아예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김치나 호박죽도 문밖에 두고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남동생이 올케와 함께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언니 집에 인사를 하러 갔을 때에도 언니의 출입통제 규칙은 지켜졌다. 샤워까지는 가까스로 피했지만, 언니 성격에 땅바닥을 쓸고 다녔을 올케의 한복 치마를 그냥 넘길 리 없었다. 그래서 둘은 욕실에서 세수를 하고, 올케는 한복대신 언니가 빨아놓은 평상복과 버선대신 흰 양말을 신고 앉아 첫 맞절을 해야만 했다. 마트에서 물건을 사면 넣어주는 비닐종이 또한 언니 집에는 그냥 들어갈 수 없다.

     일단 문 밖에서 언니가 평소 제조해 놓은 수제 알코올 스프레이로 1차 방역을 마쳐야만 현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거기서도 비닐봉지를 곧바로 집안으로 들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비닐 안의 물건을 꺼내어 일일이 닦은 후, 미리 씻어 놓은 큰 대야에 담아 한번에 옮길 때가 많다. 바깥에서 묻어 들어오는 먼지와 바이러스를 최대한 차단하겠다는 의지다. 외출할 때에도 일회용 장갑과 알코올 스프레이를 항상 지참한다. 마트 갈 때는 비닐장갑도 낀다. 가는 식당마다 소독제를 뿌리고, 한번 입은 옷은 매일 빨아야 해서 세탁기는 24시간 돌아간다. 그렇다 보니 주변에서는 ‘해도해도 너무 심한 것 아니냐’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병의 수준이라고 치료까지 권고받았었다. 손은 하루에 수십 번을 씻고, 신용카드도 사용하고 나면 매번 닦고, 집안에 먼지 한 톨도 용납하지 않는 이런 언니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솔직히 많이 피곤했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터지면서 언니의 생활태도는 빛을 발하게 되었다. 언니는 평소에도 틈만나면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구입해왔다. 한국에 황사와 미세먼지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매달 습관적으로 주문해놓은 마스크들, 외출시 항상 소지하는 소독용 알코올도 집안에 많이 비축되어있는 상태다. 그런 언니 덕분에 필자의 집에도 마스크가 많다. 언니는 일 년에 두어 번 정도 필자에게 소포를 보냈는데, 그때마다 아이들 속옷과 양말 사이에 항상 마스크를 끼워 보냈다. 일회용 마스크에서부터 면 마스크, 패션 마스크까지. 지금 생각해보면 언니는 한국의 황사와 미세먼지로 인해 마스크에 유독 집착했던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언니는 필자에게 “집안에서 개를 키우기 때문에 손세정제를 반드시 구입하라”며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집요하게 말했다. 이런 언니의 독촉으로 인해 관공서나 병원 벽에나 붙어 있을 세니타이저가 집안 곳곳에 부착되어 있다. 이렇게해서 필자는 형식적으로나마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마스크와 소독제를 가지고 있게 되었지만, 실제로는 오랫동안 장식용에 불과했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면서 필자는 언니처럼 되어가는 중이다. 어쩌다 외출이라도 하면 뭔가 만질 때마다 바이러스가 옮을까봐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가방에 손 세정제를 매달아준 지도 몇 주가 되었다. 필자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침에 괜히 목이 따끔거리거나 머리가 아픈 것 같고, 심지어 배가 아프거나 설사를 해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건 아닐까 걱정이 든다고 한다. 평소에 재채기와 콧물을 달고 사는 만성 비염 환자는 요즘 어딜 가나 눈치가 보인다. 물을 마시다가 사래에 걸려 기침을 하는 것도 불편하다. 이렇게 아무런 증상이 없어도 무증상 감염을 의심할 정도니 우리 모두 코로나 노이로제에 단단히 걸렸다. 주말에 지인을 만났는데, 인터넷 쇼핑몰에서 ‘마스크’라는 단어를 발견하고 무조건 ‘구매’ 버튼을 눌렀더니, 미용 마스크 팩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주변 사람들도 평소보다 몇 배로 자주 손을 닦는가 하면, 손 세정제가 없으면 불안해 하고, 위생에 더욱 신경을 쓰는 걸 보면서, 우리 모두 언니의 모습을 닮아 가고 있는 듯하다. 이제는 언니의 결벽증이 정상으로 보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만나는 사람마다, 가는 곳마다 코로나 바이러스 얘기다.  매일 쏟아지는 코로나 관련 기사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다. 신종플루, 사스, 메르스 등 전염병이 많았지만 이렇게 노이로제까지 동반한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언니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하루빨리 일상이 회복되기를 바랄 뿐이다. 청정지역이라고 믿었던 콜로라도주도 지난주 목요일에 뚫렸다. 그러나 아직까지 확진자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나름 열심히 조사를 하고 있다지만 한국에 비하면 엉성해 보인다. 한국은 확진자가 나오면 격리와 동시에 발 빠르게 전수조사가 들어간다. 그러면 확진자가 다녀간 모든 장소와 접촉자 수까지, 그의 동선을 웹사이트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CNN 기자가 직접 체험한 후, 대서특필된 한국의 ‘드라이브 스루(Drive-thru)’진료소는 한국이 얼마나 신속 정확하게 코로나에 대응하고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하여간에 한국은 못 하는 게 없다. 그러한 끈질긴 근성으로 백신도 만들고, 코로나도 곧 사라질 것이라 믿는다. 당장은 바이러스의 숙주가 된 아시안이라고 홀대를 받겠지만, 조만간 바뀔 것이다. 우리 모두 힘을 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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