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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센터 노인문학교실에서
은밀히 일어난 모녀 사기단 사건의 전말
2020년 01월 16일 (목) 08:46:10 이하린 기자 senellie@focuscolorado.net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우리 모친 배 여사. 심심하니 뭐라도 한번 해볼까 하더니 동네 문화센터에서 하는 노인들을 위한 문학수업을 발견하고 두 눈에 천지개벽하셨다. 한때는 자기도 교복에 단발머리 나풀나풀, 시집 한 권 들고 다니며 문학소녀를 꿈꿨다며, 지금이라도 '문학 할매'가 되겠다고 전의에 불타 수강신청 완료.  그런데 한번 두번 재미있게 수업이 진행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다음 시간까지 숙제로 시를 써서 제출하라는 선생님의 말씀 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차일피일 시간은 흘러가고, 수업 날 아침이 되었는데 여전히 빈 종이를 앞에 놓고 생각보다 시가 잘 써지지 않는다며 머리를 싸매고 끙끙댄다. 2시간 안에 시 한 편을 써가야 하는데 아직까지 한 줄도 못 썼다며 미국 사는 딸과 하는 전화 너머로 고민이 한가득이다. 보다 못해 급한 마음에 내가 "이거라고 일단 적어내라"며 예전에 써두었던 '소쩍새'라는 시를 보내줬다.

     몇 년 전 갑자기 시상이 떠올라서 그냥 끄적여본 시인데 어려운 단어가 없어서 노인이 썼다고 하기에도 무방할 것 같았다.  시간이 촉박했던 배 여사는 좋아라 하며 그 시를 들고 문학 수업에 참석했다.  수업에 다녀온 후 배여사는 "선생님이 너무 잘 썼다고 칭찬해줬다"며 입이 귀에 걸렸다.  고칠 것도 하나도 없다면서 완벽한 시라고 했어"라고 자랑이 끝이 없다.  그 정도의 극찬을 받을 만한 수준의 시는 아닌 것 같은데 아마 노인들의 개발새발 시들만을 상대하다 보니 선생님의 눈에 내 시가 상대적으로 뛰어나게 보였나부다 하는 생각이 들며 나도 허허~ 헛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소쩍새 시를 통해 선생님의 눈에 들게 된 배 여사는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가장 이쁨을 받는 애제자가 되었는데, 수업 시간 틈틈이 선생님은 "이 시의 구절은 시인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적었을까요?" 하고 배 여사의 의견을 묻는 일도 많아지고, "시를 몇 편 더 써오라"고 종용해왔다. 난감해진 배 여사는 선생님의 애제자를 그만하고 싶어질 만큼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시달림에 지친 배 여사는 선생님과 반 친구들에게 "다음 시간까지 시 한 편을 또 써오겠다"고 선언하고 다시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는 종이를 붙잡고 오래도록 끌어안고 있는다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즉석에서 떠오르는 시상들을 글로 옮길 때 좋은 시가 나올 확률이 높아요.... 시 하나를 써놓고 여기 고쳤다 저기 고쳤다 하면 시가 누더기가 될 수도 있어요..." 선생님의 주옥같은 말씀들을 참고해서.... 몇 자 적었다가 꾸깃꾸깃 버리고, 또 몇 자 적다가 꾸깃꾸깃 버리고.... 쓰레기통에는 배 여사에게 버림받은 습작품들이 넘쳐나기 시작했지만 배 여사의 불타는 문학열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하릴없는 시간은 흐르고 흘러... 다시 문학 수업 시간이 돌아왔다.  아침 일찍 전화를 하니 배여사의 한숨 소리가 전화기 너머 들려온다.

     "나이가 드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글이 안나와...." 나는 다시 헛헛 웃었다.
"어디까지 썼어? 한번 들어보자."
배 여사는 머뭇거리다가 자신이 쓴 시를 읽기 시작했다.
"길을 가는데 누가 꾸벅 인사를 하며 싱긋 웃는다. 누굴까 생각하다 답례도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누군지 생각이 안난다..." 배여사는 "여기까지 썼는데 그 다음부터는 도저히 이어서 쓸 수가 없다"며 울상이다.
"엄마, 시작은 나쁘지 않아. 그런데 너무 밋밋해. 양념이 필요해. 약간의 맛깔스런 양념만 치면 이 시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위로했다. 하지만 현재 멘붕 상태의 배 여사에게 그 양념을 어떻게 치는지를 가르쳐줄 수도 없고, 수업시간이 코앞에 다가왔으니 나는 급하게 몇 자를 적어서 배 여사에게 "이걸 엄마가 쓴 시 뒤편에다 붙이면 될 것"이라고 알려줬다. 그래서 배 여사는 다음의 시 한 편을 완성했다.
              

 <기억력>
길을 가는데
누가 꾸벅 인사를 하며 싱긋 웃는다
누굴까...
골똘히 생각하느라 답례도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집에 돌아와서도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람이 누군지 생각이 안난다
나이가 들어가면
머릿속은 맑은 날보다 구름낀 날이 많아지는 모양이다
뭉게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비치듯
내 머릿속도 오래오래 맑고 파란 하늘이었으면 좋겠다
어두운 먹구름이 조금씩 몰려들어
완전히 파란 하늘을 가릴 때가 되면
나는 파란 하늘을 찾아서
훨훨 날아오르게 되겠지

     배 여사는 신이 나서 그 시를 들고 문학교실로 달려갔다.  다음 날, 배 여사는 "선생님한테 그 시를 보였더니 "너무 잘 썼다"며 또 칭찬이 자자했다며 좋아한다. "고칠 거 없냐니까 하나도 없다며 나보고 문예전에 한번 나가보라고 하더라"며 웃는다. "근데 앞으로는 네 도움 받지 말고 내 힘으로 써봐야겠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꾸 쓰다보면 좋은 글이 나오겠지." 문예전 얘기까지 나와서 한껏 고무된 우리 문학할매 배 여사, '한번 해보자' 도전정신 충전 완료. 내가 어릴 때부터 종종 백일장이나 문예전, 신춘문예 등에 글을 써서 당선될 때마다 "내가 왕년에 문학소녀였어. 니가 글을 잘 쓰게 된 건 다 내 덕분"이라며 온갖 생색을 다 내던 배 여사에게 쬐끔 도움을 줘서 노인문학교실에서 수제자 문학 할매 타이틀을 선사하는 걸로 나도 여기서 손을 떼야겠다. 마지막으로, 오늘도 노인문학교실에서 어르신들의 문학적 감성을 자극하는 명강연을 펼치시는 선생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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