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학년인 둘째딸 엘리의 가장 절친인 제이콥은 2학년때 처음 만난 이후 7년간 한결같은 우정을 나누고 있다. 처음에는 1-2년 친하게 지내다가 반이 갈리면서 또다른 친구를 만나겠지 싶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반이 갈려도 두 아이의 우정은 변함이 없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같이 듣는 수업이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문자로 서로 숙제를 도와주고 가끔 서로의 집을 오가며 여전히 ‘플레이 데이트’를 즐기는 것을 보면 이 아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살짝 궁금해진다.  

     아이들이 친하게 지내며 서로의 집을 왕래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서로의 집에 어떤 종류의 장난감이 있는지, 뭐가 망가졌고, 뭐가 필요한지를 훤하게 아는 경지에 이르렀다. 우리가 대형 트램폴린을 사서 뒷마당에 설치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제이콥 뒷마당에도 같은 크기의 트램폴린이 설치됐다. 제이콥 집에서 나무에 동그란 원형 그네를 설치했는데, 엘리가 그집에 가서 너무 재미있다며 우리집에도 그네를 설치해달라고 들들 볶아서 우리도 얼마 후에 원형 그네를 사서 설치했다. 그러다 보니 그집이나 우리집이나 장난감이나 놀거리가 별반 다를 것이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둘은 여전히 양쪽 집을 오가며 밤늦는 줄 모르고 놀곤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가족이나 제이콥 가족도 종종 가족 행사에 서로 아이들을 초대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그중 하나는 제이콥 집의 전통인 크리스마스 트리 사냥이다. 엘리는 12월 초가 되면 제이콥 가족을 따라 크리스마스 트리를 자르러 숲속으로 들어간다. 퍼밋을 구매한 후에 아이다호 스프링스 인근에 있는 한 전나무 숲으로 가서 눈이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숲길을 헤치고 크리스마스 트리에 딱 맞는 나무를 선택해 직접 잘라서 트럭에 싣고 오는 것이다.  제이콥의 아빠와 형이 힘들게 먼저 앞서가면서 발자국을 만들어 놓으면 엘리와 제이콥은 어른들의 장화 발자국을 따라 간다. 

      20분 정도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서 크리스마스 트리로 쓸 만한 나무를 찾아내면 아빠와 형이 나무를 자른다. 무거운 나무를 힘겹게 끌고 다시 트럭이 있는 곳까지 나오는 것 역시 아빠와 형의 몫이다. 두 아이는 그냥 뒤를 따르며 서로에게 눈을 던지며 장난을 치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트리를 나무에 싣고 집에 돌아오면 트리는 곧 거치대로 옮겨지게 된다.  거치대 아래에 가득 담긴 물은 전나무가 크리스마스가 지날 때까지 흠뻑 물을 머금어 푸르름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물론 1주일에 서너번씩 잊지 않고 물을 채워넣어야 한다.

      제이콥 엄마는 살아있는 전나무에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나무 향기가 너무 좋다고 한다.  제이콥 아빠는 아내가 좋아하니 매년 죽을 힘을 다해서 전나무를 잘라 온다. 정말 살아있는 전나무를 원한다면 그냥 코스코나 월마트에서 파는 살아있는 전나무를 사는 것이 시간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훨씬 더 수월할텐데 굳이 숲속으로 힘들게 들어가서 전나무를 잘라오는 이유는 그냥 제이콥 엄마가 직접 잘라오는 전나무를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시키면 해야지, 암, 그렇고 말고.

      우리는 17년째 똑같은 가짜 나무를 쓰고 있기 때문에 사실 제이콥네의 이런  유난스러움이 꼭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제이콥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철만 되면 이렇게 밑동이 잘린 살아있는 전나무가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으면 따뜻한 집안에서 동면에서 깨어난 벌레도 나오고, 물을 줘도 나무가 말라가면서 끊임없이 침엽수가 바닥에 떨어져서 자주 청소도 해야 하며, 때로는 화재 위험까지 안고 있는 살아있는 전나무를 꼭 이용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게다가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한순간에 쓰레기로 전락해 집앞에 흉물스럽게 버려지는 전나무가 딱하기 짝이 없다.

     매년 크리스마스 철에는 미국에서 1500만 그루의 전나무가 크리스마스 트리의 용도로 잘려나간다. 미국에서만 현재 3억5천만 그루의 전나무가 크리스마스 트리가 될 날을 기다리며 트리 농장에서 자라고 있다. 하지만 생각을 한번 바꾸어보자. 나무 한그루는 1년에 평균 260파운드의 산소를 생산해낸다. 이는 4인가족이 1년간 들이 마실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만약 사람들이 진짜 나무 대신 가짜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수천만 그루의 나무가 매년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이들 나무들이 크리스마스 트리로 소비되는 대신 지구의 대기질 개선이라든지 온실화를 늦추는 더 전지구적인 목적으로 사용된다면 현재 기후 변화로 인해 멸망으로 달려가는 지구라는 폭탄의 속도가 조금 더 늦추어지지 않을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상점 앞 차가운 바닥에 내팽겨쳐지듯 즐비하게 놓인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니 씁쓸한 마음이 든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일을 표방하는 크리스마스가 수천만 그루의 전나무의 초상날이 될 것을 예상했을까?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