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밤시간에 C-470 고속도로를 지날 일이 생겨서 그리로 운전했습니다. 그런데 I-25부터 워즈워드 사이 모든 구간이 공사 중이라 몹시 불편한 여행이었습니다. 자주 다니면 대충 상태와 사정을 알고 익숙하겠지만 어쩌다 운전하는 사람은 운전이 몹시 어려울 정도입니다. 안전을 위해 설치한 콘크리트 블럭의 간격도 협소하고 임시로 지정해 놓은 차선도 구불구불하고 표면도 균일하지 않은데 여기저기 임시로 패치를 해 놓은 상태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운전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그리고 한밤중에 여기저기 공사용 작업등을 켜 놓았기에 어떤 구간은 작업등을 정면으로 보면서 운전을 하게 되어 차선이나 도로상의 장애물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콜로라도 교통국(CDOT : Colorado Department of Transpotation)에서 정보를 찾아보니, 이 구간에서 지금 진행하고 있는 공사는 12.5마일 길이, 총금액 2억7천6백만 달러 예산규모로 진행되는 C-470 Express Lane 공사입니다. 상습 정체 구간인 I-70 아이다호 스프링스나 덴버에서 볼더 사이 US36 도로에 이미 적용되고 있는 Express Lane을 C-470에도 만드는 것입니다. 빠른 속도로 도시가 확장되고 인구가 증가되는 가운데 덴버 메트로의 출퇴근시간 정체는 점점 악화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원활한 교통흐름을 위해 Express Lane 공사를 하는 것으로 대충 이해합니다. 공사 주체는 콜로라도의 상황에 이런 도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이런저런 여러 설명에는 장점과 칭찬만 나열되었습니다.
 
     어떻게 요금을 지불하고 사용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자세하게 있습니다. 그러나 불편에 미안하다는 사과나 언제까지 끝내겠다는 안내는 찾지 못했습니다. 사용 요금이 얼마인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없습니다만, 이미 시행 중인 다른 구간처럼 시간별로 차등된 과금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볼더 구간에는 카풀을 장려하기 위한 HOV (High Occupancy Vehicle) 무료 이용이 허용되었으나 C-470 구간에서는 아닙니다. 하이브리드 차량이나 전기자동차도 무료가 아닙니다. 이 차선을 이용하려면 무조건 돈을 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의 불편함을 감수하여서 도로 조건이 현저히 개선된다면 참으로 기쁘게 환영할 일입니다. 그런데 Express Lane 공사구간을 지나면서 공항의 보안 검색대를 연상했습니다. TSA 보안 검색은 모든 탑승객과 이용객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함을 누구나  이해합니다. 그러나 검색을 기다리는 지루하고 긴 줄서기는 전혀 즐겁지 않습니다. 저 같은 서민들은 딱히 잘못이 없어도 제복입은 사람들 앞에 서면 긴장됩니다. 그러니 검색대를 지날 때마다 여행의 시작부터 내가 왜 여기 줄서서 죄인 취급을 받고 있는지 집 떠난 후회를 하게 만듭니다. 이런 불편함이 싫은 사람은 티켓팅 할 때 프리미엄 프로세싱 신청을 하고 추가 요금을 내면 비교적 줄이 짧고 빠른 다른 입구로 갑니다. 덴버 공항뿐이 아니라 다른 공항들, 심지어 다른 나라의 공항에서도 이런 프리미엄 엑세스가 가능합니다.
 
     티켓팅이나 기타 모든 항공 서비스의 경우 비지니스 클래스 이상을 이용하는 승객들이 먼저 처리되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비행기가 취소, 연착되어 탑승권을 새로 받아야 하거나 항공사에서 식사, 숙박 바우처 등을 지급하는 경우에도 그러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불하는 금액에 따라 차등 적용되는 서비스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칙이라는 대의 아래서 질적으로 구분되는 서비스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조건에 의해 결정되며 서비스도 가격이 매겨지는 상품의 일종입니다. 모두가 바라는 좋은 서비스는 비싼 것이 당연합니다.
 
     어릴 때 정말 귀한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배웠습니다. 부자에게나 가난뱅이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라고, 시간은 아무리 많은 돈을 주고도 사지 못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Express Lane 이용은 시간을 사는 것입니다. 길바닥에서 보내는 시간을 일찍 퇴근해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돈으로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을 구입하다니, 교통체증으로 날아가는 시간을 우리에게 유용한 시간으로 변경한다니 좋아 보입니다. 통행료가 그리 비싸지 않고 감당할 수 있다면 여기에 별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격이 저렴해서 누구나 다 이용할 수 있다면 모두가 Express Lane을 이용하려 하기 때문에 결국 이 차선도 같은 정체가 형성되지 않을까요? 그럴 땐 가격을 더 올려서 금액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이용을 기피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걸까요?
 
     우리는 소유의 많고 적음에 따라 기회가 차별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문득 우리 사회가 변해가는 방향을 바라보면 어릴 때 배우고 기대했던 세상과는 사뭇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불하는 금액에 비례하여 서비스의 질이 향상된다는 당연함은 인정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서비스를 판매하는 기업이 아닙니다. 이런 정부가 공공의 안전과 편의를 위한 사회기반 시설로 상업적 이익을 추구 하지는 않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Express Lane 이용 금액으로 수익이 창출된다면 공공 도로 건설과 보수와 개선을 위한 재원으로 사용할 것을 믿습니다. 도시의 건강한 교통 소통을 위해 꼭 필요한 공사라는 데에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구간에 Express Lane을 적용하겠다는 계획에 대해서 반대의견을 제기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느 방향으로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는지 모두가 잠시 멈추고 생각은 해야 합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많아지는 세상은 불평등과 불만을 키우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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