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속을 썩거나 고민을 하다 속 시원하게 해결될 때 사람들은 흔히 하는 말로 ‘앓던 이 빠진 것처럼 시원하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들에게는 이 앓이가 큰 고통 중에 하나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매사가 그렇듯이 많은 사람들이 이같은 고통을 당하는 것은 치과 진료를 받는 것이 두려워 차일피일 미루다 제때 치료가 이뤄지지 않아 막상 이 앓이가 시작되었을 때에는 이를 빼거나 신경치료까지 가는 등 큰 시술을 받아야 되기 때문이다.병원 가는 일은 다 두렵지만 특히 치과가는 것이 두려운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마찬가지 인 것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인류 공통의 경험인 것 같다. 일본 작가 다나카 요시키가 지은 ‘은하 영웅 전설’에 등장하는‘양 웬리’는 “영웅은 선술집에 가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만 치과 치료대에는 단 한명도 없다”고 했다. 전쟁에서는 지략이 뛰어난 명장인 그도 치과라면 질색을 했던 것 같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질색인 치과이지만 이를 극복하는 것은 단 하나, 건강할 때 지켜두기만 하면 복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치아는 단지 음식을 씹어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예를 들어 치아와 치매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면 음식물을 씹는 행위로 인해 그 신경이 해마에 자극을 줌으로써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얼마전 일본에서는 한 치과의사가 치매에 걸린 환자에게 틀니를 새로 씌워줌으로써 정신을 되찾았다는 보고가 실제로 있었다. 다시말해 치아의 운동이 신경을 통해 뇌의 작용을 활발히 하여 치매를 예방하거나 혹은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치아는 음식을 씹어 소화를 돕는 작용 이외에도 각 신체의 기능과 미세한 신경을 통해 연결, 특히 골다공증, 뇌졸증 및 당뇨, 그외의 많은 신체부분에 고루 영향을 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치아는 건강뿐 아니라 고귀한 신분의 징표로 여겨지기도 했다. 북송 때의 관상가 ‘진단’은 그의 저서 ‘마의상법’에서 치아의 배열상태, 색깔과 모양을 가지고 사람의 길흉을 예측하기도 했다. 그는 치아가 많을 수록 귀한 상이라고 여겨, 38개면 왕후, 36개면 경상, 34개면 고관·갑부, 32개면 중인, 30개면 평상인, 28개면 하층의 빈곤한 사람이 될 상이라고 적고 있다. 현대 성인의 경우 28개의 정상 치아에 사랑니 4개를 더하여 모두 32개의 치아를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해서 그시절의 왕후나 장상은 36개에서 38개나 되는 치아를 가진다고 했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아무튼 영양과 위생상태가 좋을 수 밖에 없는 고관대작들이 치아를 잘 보존할 수 있을 것이고,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의 경우 치아 결손이 많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주 근거없는 말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치아가 많은 것을 고귀한 신분의 징표로 여기는 일은 중국뿐만이 아니라 신라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신라 시대 임금을 일컫던 이사금이라는 칭호도 이가 튼튼하고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데서 나왔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남해 차차웅이 세상을 떠날 즈음 아들 유리와 사위 탈해 가운데 누구에게 왕위를 잇게 할 것인지 논란이 일자 성스럽고 사람은 치아가 많다는 전래의 기준에 따라 두사람에게 떡을 베물게 해 잇자국 수가 더 많은 유리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고 적혀 있다. 여기서 이가 많다고 할 때 실제 입속의 치아의 개수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나이가 많음을 뜻하는 연치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떡에 나타난 잇자국 수를 헤아렸다는 점이 재미있다.
 
      이 앓이로 시작되는 치통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어서 ‘짐이 곧 국가다’라고 큰 소리 친 태양왕 루이 14세는 평소 단 것을 좋아해 결국엔 나이 마흔을 넘어서자 마자 치통이 최악에 이르러 어금니를 뽑기에 이르렀고 사후 감염조치를 제대로 못해 치근 주위의 염증을 제거하기 위해 턱뼈 일부를 자르는 수술을 받기까지 했다. 그가 치아로 인해 겪은 고통은 중범죄를 지은 자가 고문실에서 당하는 고통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으리라. 오늘날 성 아폴로니아 치과(St Apollonia Dental Clinic)라는 이름의 병원을 볼 수 있다. 성녀 ‘아폴로니아’는 서기 249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이교도들로부터 강제로 치아를 뽑히는 고문을 당하다 극심한 고통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불에 뛰어들어 순교했다.
 
      그리스도교의 성녀로 추앙된 아폴로니아 성녀는 이후 치통환자와 치과의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게 되었다. 이집트나 러시아, 티베트 등 일부지역에서는 오늘날에도 범죄자 등을 고문할 때 고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날카로운 도구로 치아나 손톱을 뽑는 경우가 많은데 바로 사람의 고통이 치아의 신경조직을 자극할 때 최고조에 이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이 이같은 일을 당할 일은 없겠지만 간혹 치통을 자초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옛사람들의 일을 떠 올리는 것은 나만의 직업의식에서 오는 안타까움일까. 앓던 이 빠져 시원하다고 하기 전에 더 큰 고통을 막기 위해서라도 치과의사와 친구되는 것이 복을 지키는 지름길임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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