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8일부터19일까지 덴버에서 처음으로 “Con.fluence 2019”란 컨프런스가 가 개최된다. 변해가고 있는 미국 문화와 한인 이민 사회 가운데 한인 교회가 필요한 이유,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나누고자 하는 컨프런스의 명칭이 “Con.fluence 2019”이다. Webster 사전에는 Confluence를 “두 물줄기 또는 그 이상이 함께 흐르는 것” (the flowing of two or more streams) 라고 했다. 우리 말로 “합류”라고 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소룡’으로 알려진 Bruce Lee는 헐리우드에서 전설적인 액션 무비스타이다. 그는 아시안계 배우들이 단역이나 엑스트라로 동원되던 시절에 주연으로 등장하며 동양 무술을 영화의 한장르로 승격시켰으며, University of Seattle에서 철학과 연기를 전공한 철학도이기도 했다. 무술을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고 아깝게도 그는 1973년 33세에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 몇 개월 전에 한 기자와 인터뷰를 한 내용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어떠한 형태나 구속이 없도록 마음을 비워라. 마치 물과 같이, 물은 병에 담으면 병 모양이 되고, 컵에 따르면 컵 모양이 된다. 물은 흘러가기도 하고, 무언가와 충돌할 수도 있다. 물이 되어라, 나의 친구여!”라고 말했다. 물은 환경을 만나기 전에는 모양이 없다. 콜로라도 강은 그 시작이 록키마운튼 국립공원 안에 있는 작은 호수로 시작한다. 작은 물줄기가 지류들과 만나면서 강의 모습을 띄게 된다.

       Green River, San Juan River 등과 합류하면서 콜로라도 강은 그 모양이 더 풍성해진다. 아리조나의 협곡을 만나 Grand Canyon을 만들며, 결국 이 강은 북부 멕시코의 걸프에서 바다를 만난다. 우리는 강물을 보면서 몇 가지 보편적 특징들을 추리할 수 있다. 첫째로, 강은 흐르는 물이다. 둘째로, 강은 항상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셋째로, 강은 새로운 환경을 만나며,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낸다. 그것이 협곡이던, 폭포이던, 말굽형이던, 강은 제 할 일을 한다. 넷째로 강은 결국 바다를 만난다. 땅의 제일 낮은 곳에서 강물은 바다와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강에서 바다로”가 성경의 이야기 줄거리이기도 하다. 성경의 첫 권인 창세기에(2:10-14) 에덴 동산에서 네 강이 시작했는데,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라고했다.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 (22:1-2)에서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네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그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고 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의 삶도 강물과 같이 흘러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창세기에 나오는 강 이야기는 에덴 동산을 쫓겨나게 된 아담과 하와처럼 땀 흘리는 수고와 해산의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는 삶의 이야기가 구약의 말씀이다. 또 요한 계시록 4:6에는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라고 한 것을 본다면, 생명수의 강이 발원하는 곳은 보좌 앞에 있는 바다란 것을 짐작하게 한다.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 강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들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요한 계시록에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라는 말을 여러차례 기록하고 있다. 교회는 ‘어린 양의 비전’을 이미 받았고, 이것을 우리는 복음, 즉 “기쁜 소식 또는 복된 소식”이라 하며, 그 역할은 ‘만국을 치료’하는 것이라고 정리해 준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복음이 물과 같이 흐르도록 개발하고, 관리하고, 촉진하는 곳이다. 복음도 물과 같이 형태가 없다. 물이 환경을 만나야 형태를 형성하듯, 복음이 기쁜 소식이 되려면 삶의 현장이 필요하다. 그래야 무엇이 기쁜 소식인지 형태로, 이야기로, 생활로 나타난다. 복음이 만국을 치유하는 생명수 강물과 같다면 흘러야 한다. 낮은 곳으로 흘러야 한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적응할 줄 아는 복음의 능력을 맛보려면 복음을 세상 속으로, 우리의 삶 속으로 던져 놓아야 한다. 그러면, 복음은 지류들을 만날 것이고 더 힘차게 제 흐름을 계속할 것이고, 결국에는 생명수 강물과 합류할 것이다. 문화와 복음이 만날 때, 복음은 그 형체를 확실히 들어낸다. 이 때 ‘문화’란 삶의 방식 (a way of life)를 뜻한다. 삶의 방식, 즉 문화는 시대에 따라서 변하고, 가치관에 따라 변하고, 사람들의 환경과 필요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문화를 생산적으로 이끄는 촉매제가 바로 복음이다. 부패한 문화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복음 안에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말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 전서 5:17)는 복음의 핵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그 사람은 새로운 사람이며, 지속적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어간다는 뜻이다. 한인교회에는 크게 세가지의 분리상태가 존재한다. 언어의 분리(Language Gap), 문화적 분리(Cultural Gap), 세대적 분리(Generational Gap)이다. 이 갭들을 극복하기 보다는 분리 속에서 안주하여 신앙생활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일세들에게는 언어와 문화와 세대가 분리되는 것이 더 편하고 효율적이었음을 우리는 인정한다. 그러나 한인 이민 사회는 변하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한인 인구통계에 의하면 영어권의 한인이 과반수를 넘어섰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한인교회는 90%이상이 한어를 사용하는 교회이다.

       분리된 환경에 안주하면 일세들은 편하지만 2세와 3세들에게는 불편하며, 그 불편을 느끼는 자들은 한인교회를 떠나고, 편함에 안주한 숫자는 날로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한인교회가 예배에서부터 하나가 되기를 꿈꾼다. 한어권과 영어권이 한 예배로 합류하는 사역을 꿈꾼다. 따로 예배 드려야 할 수 많은 이유가 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세가지 이상의 언어를 사용했고, 문화적으로 다양했고, 여러 세대가 함께하는 교회로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감격적인 예배를 드리며, 변화 받는 생명들이 늘어났다. 또 나는 교회 교육에서 합류의 사역이 이루어질 것을 꿈꾼다. 한인교회는 문화와 복음이란 양 날의 검(Double edged sword)이 합류하여 조화를 이루기를 바란다. 양날의 검이 효과적으로 사용되기 위해서 한어와 영어가, 일세와 이세가, 미국 문화와 한국 문화가 합류하여 복된 공동체를 이루는 꿈을 키워본다. 강물이 새로운 환경을 맞이할 때 자신을 변화시켜 새로운 창조를 이루듯이, 다문화 세상 속에서 복된 소식을 나누며 즐기는 공동체의 비전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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