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500년대부터 근대까지 끊임없이 한국을 침략했고, 한국을 30여 년 동안 식민통치했다. 이로 인해 한국은 스포츠, 경제, 군사,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일단 일본만은 이겨야 한다는 집념이 깔려 있다. 한편으로는 이런 일본으로 인해 한국은 민족적 단결력이 강화되었고, 국력 신장에도 동기 부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가까워도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앙숙 관계가 비단 한국과 일본만은 아니다. 남미 축구의 영원한 라이벌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오랜 식민지 생활로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며 유색 인종이 어울려 살아간다. 반면 스페인의 통치하에 있던 아르헨티나는 유럽계 백인이 90%를 차지하며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백인이 대다수인 아르헨티나는 브라질보다 인종차별이 심한 편이어서, 다른 남미 국가에서는 이런 아르헨티나가 교만하고 건방지다고 생각한다. 두 나라는 오랫동안 자동차 무역, 외환정책, 농산물 교역과 관련한 갈등이 지속되어 왔으며, 파라나강 이용권 및 이과수폭포 지역 확보 문제를 둘러싸고도 각축전을 벌여왔다.

      아일랜드와 영국은 영토 지배와 종교 탄압에서 비롯된 뿌리 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다. 1169년 영국 왕 헨리 2세가 아일랜드 영토를 침입한 것을 시작으로, 아일랜드는 800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엘리자베스 1세 때부터는 영국의 직접 통치가 이루어졌고, 결국 1801년에 대영 제국의 일부로 완전히 병합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아일랜드는 본격적인 독립 전쟁을 펼쳤으며, 1921년 독립 승인까지 대영 제국의 일부로 존재했었다. 영국과 프랑스야말로 유럽의 대표적인 견원지간(犬猿之間)이다. 세계사에서 너무도 유명한 ‘백년전쟁’의 주인공들이 아닌가. 당시 프랑스는 500년 넘게 유럽에서 세력을 펼쳤는데, 그때마다 영국은 러시아, 독일, 스페인 등과 동맹을 맺어 프랑스를 견제했다. 서로의 문화를 인정하지 않은 두 나라, 자국의 문화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남달랐던 이 두 나라는 시시때때로 서로의 문화와 민족성을 건드리면서 자존심에 흠집을 내곤 했다. 예를 들면, 2013년 프랑스의 한 매체가 영국 왕세손비 케이트 미틀턴의 노출 사진을 실었다. 왕가에 대한 절대적인 애정을 지닌 영국민은 크게 분개했고, 외교 문제로까지 확대되었다. 세계가 찬사를 보내는 프랑스 음식에 대해서 유독 영국인들만 냉담한 것도 그렇다. 일례로 영국은 프랑스 빵을 줄곧 수입하지 않다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정식으로 수입했다.

       독일과 프랑스 또한 좋은 친구는 아니었다. 1000여 년 동안 크고 작은 나라로 갈라져 있던 독일은 오랜 시간 프랑스의 괄시를 받았다. 게다가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진 대가로 라인 연방을 만들어 나라가 갈려지는 수모도 겼었다. 벼르고 있던 독일은 1870년 비스마르크의 지휘 아래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고, 마침내 파리를 점령했다. 그 이듬해 빌헬름 1세는 프랑스의 상징인 베르사유 궁전에서 즉위식을 열었다. 프랑스인에게 모욕적인 역사가 아닐 수 없었다. 이후 강대국으로 떠오른 독일은 프랑스에 전쟁 배상금 50억 프랑을 요구했다. 자존심이 강한 프랑스는 불과 몇 달 만에 돈을 모아 갚았고, 이후 둘은 가슴 깊이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다. 중국과 일본도 숙적이다. 1894년 중국과 일본은 동아시아 패권을 두고 계속 분쟁을 벌였다. 그러던 중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세력 다툼이 벌어졌고,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전쟁 준비를 철저히 해서 청일전쟁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이후 1937년 일본은 중국을 상대로 또 한 번 전쟁을 일으켰다. 일본 정부는 선전포고도 없이 중국의 수도인 난징을 점령하고 30만 명이 넘는 시민을 학살했다.

       폴란드는 독일에 한이 서린 국가다. 폴란드는 발트 해로 나가기 위한 통로이자 러시아로 가는 길목에 있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 탓에 400년 동안 독일이 전쟁을 벌일 때마다 희생양이 되었다. 그리고 18세기 후반에는 통일 독일의 중심이 된 프로이센과 러시아에 점령당해 123년간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1차 대전 직후 간신히 나라를 되찾았지만, 독일이 2차 대전을 일으켰을 때 맨 먼저 침략당한 곳도 폴란드였다. 히틀러의 인종차별주의 정책으로 폴란드계 유대인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혀 무참히 학살당했으며, 2차 대전 때 사망한 폴란드인은 6백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분의 1이나 되었다. 그렇지만 현재 이들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모두 공생의 길을 찾고 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1980년대 후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인근 국가로서의 우호협력 관계를 확고히 하게 되었다. 2007년 취임한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브라질과의 관계를 중시하겠다고 천명, 양국 간 무역결제 시 미 달러화 배제하고 자국화폐 사용에 합의하는 등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관계도 2011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아일랜드를 방문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는 100년 만에 이루어진 영국 국가원수의 아일랜드 방문이었다. 반영 감정과 테러 위협에 대한 우려와는 달리 여왕은 진솔하게 화해의 메시지를 전달했고, 아일랜드인은 여왕을 따뜻하게 환영했다. 그리고 3년 후 영국을 국빈 방문한 히긴스 대통령 역시 영국의회 연설에서 “국가적인 증오를 과거의 일로 만들자는 결의를 같이 나누겠다”고 하며, 아일랜드와 영국의 미래에 대해 강조했다. 또, 영국과 프랑스는  유럽우주기구를 강화하기 위해 공동투자를 하는가 하면, 원자력 에너지, 환경, 방송 통신분야에서도 협력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도 경제파트너로 생각이 바뀐 지 오래다. 지속적으로 경제협력을 이어왔으며, 최근에는 전기차용 배터리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지난 5월 양국은 이를 위해 약 7조억 원을 투자하고, 생산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중국과 일본도 험난한 역사를 뒤로한 채 화해 분위기가 짙다. 아베는 지난해 5백여 명의 경제사절단과 함께 중국을 공식 방문했다. 30조 원 규모의 중일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었고 20조 원 규모의 기업 간 경제협력에도 합의했다. 제3국 진출 경제협력과 투자를 위한 펀드도 함께 조성하기로 했다. 세계 2, 3위 경제 대국인 중국과 일본이 트럼프의 통상압박에 맞서 손을 꽉 잡은 것이다.

      역사상으로만 본다면 철천지 원수 사이로 지내야 하는 폴란드와 독일의 관계도 건설적이다. 폴란드에 진출한 독일 기업은 6000곳이 넘고 고용인원도 30만 명 이상이다. 폴란드가 1992년 이후 한 번도 마이너스 성장 없이 경제 규모를 키운 것도 독일 덕택이다. 독일의 대표적인 기업 벤츠가 폴란드에 투자를 결정했을 때, 폴란드 총리는 벤츠사의 임원에게 거듭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폴란드는 지금까지 과거사나 외교·안보 이슈로 독일을 비판할 때 수위를 조절해왔다. 먹고 사는 문제에 지장을 줄 정도로 독일과의 관계를 어지럽히지 않겠다는 의지가 깔려있다. 폴란드는 독일의 투자를 끌어당겨 날로 부강해지고 있으며, 독일과 공생하게 된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세계은행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폴란드 경제를 분석한 책을 발간하면서“폴란드는 2차 대전 이후 독일의 발전 전략을 따라 하며 성공하는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많은 국가들은 역사를 잊지 않되 현재를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택했다. 한국과 일본은 아직도 전쟁 중이다. 하지만 배척만이 최선의 길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도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와 공생할 수 있는 비책을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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