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69주년 … 끝나지 않는 아픔

      지난 24일 오전 서울 동작구 현충원으로 허름한 챙 모자와 배낭 차림의 할머니가 걸어 들어왔다. 그가 향한 곳은 현충원 경내에 마련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중앙감식소. 접견실에서 직원과 만난 할머니는 "우리 삼촌 유해 좀 찾아주세요"라고 했다. 할머니 이름은 안선옥(75)씨. 6·25전쟁 당시 국군에 입대했다가 실종된 삼촌 유해를 찾아 여기에 왔다. "키가 작달막했던 우리 삼촌은 입대 전 방공호에서 '쐐에엑' 하는 전투기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는 나를 꼬옥 끌어안으며 토닥여주곤 했어요." 안 씨는 직원이 내민 종이에 삼촌의 인적 사항과 가족관계, 군번, 전사 날짜 등을 떨리는 손으로 적어냈다.

      이어 직원 안내에 따라 입을 물로 2~3번 헹구고는 면봉으로 입안 구석구석 훑어 봉투에 담아 직원에게 건넸다. 그러는 동안에도 안 씨는 여러 차례 눈물을 훔치며 훌쩍였다. 이제 수일간 DNA 대조 작업을 거쳐 그동안 발굴된 유해 가운데 삼촌이 있는지가 확인될 것이다. 이날 안 씨가 방문한 중앙감식소 옆에는 '국선제(國宣悌)'라는 임시 유해 보관소가 있다. 전국의 6·25 격전지에서 발굴된 무(無)연고 국군 유해를 2008년부터 보관하는 곳이다. 일반인이 들어가서 추모할 수 없는 통제 구역이다. 유골 7700여구는 특수 처리된 상자에, 1000여구는 화장(火葬)된 상태로 도자기 유골함에 담겼다. 모두 이름 대신 관리번호만 붙어 있다. 안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동생을 그리워하신 게 한평생 마음에 걸렸는데 이번에 꼭 삼촌 유해를 찾아 이제부터라도 제사를 제대로 모시고 싶다"고 했다.

       사실 안 씨 소원이 이뤄질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6·25전쟁 당시 실종된 국군 전사자는 약 13만3000명.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2000년 유해 발굴 사업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1만1000여명의 유해를 찾았을 뿐이다. 이 가운데 가족 품에 돌아간 유해는 지금까지 132구에 그친다. 발굴단 관계자는 "발굴 유해 DNA만으로는 완벽한 국적 판명이 어려워 유가족 DNA와 대조해야만 무명용사들이 '국군'의 이름을 찾고 현충원과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유족이 수십년째 찾으려 드는 전사자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현재 발굴단이 확보한 유가족 DNA 시료는 4만7164개. 실종 전사자를 모두 찾더라도 8만6000명의 유해는 국선제를 떠나 햇빛을 볼 수 없다는 계산이다. 발굴단 관계자는 "70년 가까이 흐르면서 전사자 직계 가족은 대다수 사망했다"며 "8촌 이내 유족도 DNA 감식은 가능하지만 전사자 인적 사항을 잘 모르거나 '직계도 아닌데 뭐하러 번거롭게 DNA를 채취하느냐'는 반응도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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