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모욕언사, 언론보도 50배 … 너도나도 손사래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백악관 비서실장 자리는 야심가들이 선망하는 '꿈의 직책'이다. 이 자리를 거치고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한 인물이 많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때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리언 패네타는 이후 CIA 국장과 국방부 장관으로 승승장구했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백악관 비서실장인 램 이매뉴얼은 시카고 시장에 당선됐다. 백악관 비서실장은 권력의 정점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 '꿈의 자리'를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어 백악관이 고심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충성을 표시하는 사람조차 백악관 비서실장을 맡겠다고 나서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존 켈리 비서실장을 연내 교체하기로 하면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비서실장인 닉 에이어스를 후임자로 검토했으나, 세 쌍둥이의 아버지인 에이어스는 가족 부양 등을 이유로 들며 스스로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트럼프가 다른 후보자 4명을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으나, 이들도 모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미국 언론은 전한다.

     AP통신은 "믹 멀베이니 백악관 예산국장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 자리에 관심이 없다는 의사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후보 물색이 궁해진 트럼프가 정치권 밖에서 찾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후보로 거론된 랜디 레빈 뉴욕 양키스 회장은 선수를 쳐서 9일 폭스뉴스 인터뷰에 "대통령을 존경하지만 나는 지금 자리가 좋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트위터에서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백악관 비서실장 자리를 원하고 경쟁하고 있다"고 했다.

     WP는 백악관 비서실장 자리가 이처럼 기피 대상이 된 원인 몇 가지를 들었다. 우선 백악관 내의 복잡한 알력 관계다. 정상적이라면 백악관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문고리 권력'이어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의 백악관에서는 일명 '자방카'로 불리는 대통령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맏딸 이방카가 그 역할을 틀어쥐고 있다. 또 비서실장이 되면 '자방카'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의 눈치까지 봐야 한다는 것이다. 현 켈리 실장은 '자방카'를 가리켜 "정치 놀이를 하고 있다"며 공공연히 비난했다가 이들로부터 견제당해 백악관 내 입지가 크게 위축됐다. 차기 비서실장 유력 후보였던 에이어스는 '자방카'와는 끈끈한 관계를 맺는 데 성공했지만, 그로 인해 멜라니아의 반감을 샀다고 한다. CNN은 "에이어스가 최종 지명되지 못한 것은 멜라니아가 그에 대해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 행정부의 백악관 비서실장은 '미션 임파서블'을 수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 데다 즉흥적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를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다들 이 '극한 직업'을 꺼린다는 것이다. 로버트 뮬러 특검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로 트럼프가 탄핵 위기를 맞을지도 모르는 상황 역시 비서실장 구인난에 한몫했다. 역대 백악관 비서실장의 역사를 다룬 '게이트키퍼스'의 저자 크리스 휘플은 NPR에 "누가 비서실장이 되더라도 법정 분쟁에 휘말리는 사태를 피하기 어렵다. 정치적 야심가로 알려진 에이어스가 비서실장직을 고사한 것도 이런 계산 끝에 발을 뺐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트럼프의 비서실장이 되면 수시로 공개적인 모욕과 조롱을 감내해야 한다는 점이다. 밥 우드워드의 책 '공포'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초대 백악관 비서실장인 라인스 프리버스를 "쥐새끼 같다"고 모욕하는 대목이 나온다. 트럼프에 의해 축출된 프리버스는 이후 잡지 베너티 페어에 "트럼프의 언사는 언론에 나오는 것보다 50배는 더 심하다고 보면 된다"고 치를 떨었다. 잡지 뉴요커는 백악관 비서실장 구인난에 대해 "트럼프호라는 기울어져 가는 배에 위기감을 느끼고 쥐들이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고 비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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