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과 버냉키 의장은 미국 경제가 튼튼해 지고 있다고 연일 말하고 있지만 체감 경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요즘 타운을 돌아다니다 보면 경제가 지난해 보다 나아진 것이 별반 없다고 느낀다. 직원 월급 주고, 렌트비 내고, 간신히 페이먼트까지 처리하게 되면 성공적으로 비즈니스를 경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저축은 생각하기조차 힘들다. 돈이 없어서 돈을 빌리려고 해도 빌릴 곳도 없고, 담보가 있다 해도 융자받기도 까다롭다. 자금 융통이 안 되는 상황에서 비즈니스를 하다 보니 악순환이 계속된다. 도매상에게 끊어준 체크가 한 번, 두 번 부도 처리되면서 현금결제만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으면 가게들은 본격적인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돈이 있어야 물건을 들여오고, 물건이 들어와야 손님이 있고, 손님이 있어야 돈을 버는데, 이것이 안되니 장사가 안되고, 장사가 안되니 수입도 없어 주인도 짜증나고, 주인이 짜증나니 종업원도 일할 의욕을 잃고, 그나마 있었던 손님들도 모두 떨어졌다. 이 또한 악순환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어느 한 가게에 국한된 상황이 아니어서 그나마 마음의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얼마 전 한 가족은 오로라에 위치한 L식당을 찾았다. 파더스 데이에 모처럼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나선 외식 길이서 들뜬 마음이었다. 맛있는 식사와 정다운 대화의 자리를 기대하면서 들어선 식당은 기대에 부흥하지 못했다. 육개장을 주문했다. 국물을 얼마나 오랫동안 두고 다시 졸이고 졸였는지 첫 숟갈을 뜨면서 쉽게 알 수 있었다. 몇 숟갈을 뜨고 이리 저리 국 그릇을 저어 봤는데 육개장의 메인인 고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웨이츄레스를 불러 고기가 없다고 하니, 아까 주방에서 그릇 밑에 넣는 걸 봤다면서 벌써 다 먹은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퉁명스럽게 답했다고 했다. 청결하지 못한 음식상태와 고기 몇 점, 불친절한 말투 때문에 오랜만에 가진 가족 외식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들은 다 먹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돈만 내고 나왔다. 몇 주가 지난 지금에도 그 가족들은 그때의 불쾌한 기분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못먹고 못살던 30년전 한국식당에서도 이러진 않았다면서 말이다.

손님이 없는 식당은 짜증이 나 있기 마련이지만 이를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그나마 찾는 손님도 놓친다. 그리고 그 고객 한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주변까지 잃어 버린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식당 측의 기분대로 손님을 대하는 것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물론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다. 식당에서 일부러 트집을 잡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식당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눈치챌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끼리 오붓하게 식사하려는 사람들이 쓸데 없이 생떼를 피우지는 않는다. 설령 생떼를 피우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고기가 없다고 하면, “조금 더 갖다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면 되고, 머리카락이 있다고 하면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위생에 더욱 신경 쓰겠습니다”고 하면 되고, 국물을 너무 졸여 짜다고 하면“오래 끓일수록 맛있다고 해서 오래 끓여서 걸쭉한 겁니다. 싫으면 다시 해 드릴까요?”라고 하면 되고, 손님이 반찬이 만들어 놓은 지 너무 오래돼서 모두 말랐다고 하면 맛있는 김치 한 접시 더 내어가면 지적하는 사람들도 한 결 마음이 수그러든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얘기이다. 이건 굽실거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가끔 굽실거리는 것과 친절한 것의 의미를 혼동하는 것 같다. 굽실은 자신의 의무과 위치를 망각하고 과잉으로 아부하는 것이다. 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비굴한 행동이다. 하지만 ‘친절’은 자신의 위치에서 상대방을 정성스레 배려하는 행동이다. 식당 주인이 옛날에 잘나갔던 인물이었다든지, 웨이츄레스의 성격이 원래 퉁명하다든지, 돈이 없어서 신선한 재료를 구입하지 못했다 등은 손님을 홀대하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깨끗한 분위기 속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겁게 식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은 손님들의 권리이고 식당의 기본이다. 그 기본에 충실 한다면 친절은 당연한 행동이다. 주인이나 웨이츄레스의 기분에 따라 고객이 식당에 굽실거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장사도 안 되고, 짜증나는 일도 많지만 그래도 지금은 하는 일에 충실하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다. 신문사도 마찬가지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받는다. 심지어는 근무를 하지 않는 일요일 저녁에도 전화를 해서 업소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 그리고 미안한 말투로 얘기하면 리턴 콜을 해서라도 궁금증을 풀어준다. 아니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더운 여름이 시작됐다. 괜시리 짜증날 때가 많다. 그럴 때일수록 말 한마디라도 배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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