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가는 길도 소탈하게

    향년 73세로 지난 20일 별세한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생전 고인이 사랑하던 숲과 새, 나무가 있는 자연 속에 영면했다. 고인의 유해는 화장된 뒤 수목장(樹木葬·화장한 유골을 나무 근처에 묻거나 뿌리는 장례방식)으로 치러진 것으로 알려졌다. 장지(葬地)는 경기도 곤지암 인근 지역이다. 곤지암 인근에는 구 회장이 조성한 화담숲이 있다. 화담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다라는 뜻으로 구 회장의 아호이다. 재계 4위 그룹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고인은 이제 속세를 떠나 자연과 정답게 교감할 것으로 보인다. 고인은 생전에도 자연 속에서 많은 영감과 통찰력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목장은 비석 등 인공구조물 없이 화장한 유골을 묻는 나무에 식별만 남기기 때문에 자연환경 훼손을 최소화한다. 구 회장이 수목장을 택한건 국내 장묘문화 개선에 대한 의지 때문이다. 고인은 평소 “매장 위주 장묘문화로 전 국토가 산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의 땅으로 변질하고 있다”며 “전국 명당이라는 곳마다 산소가 만들어져 안타깝다”고 했다. 매장 중심 장묘문화를 바꾸기 위해 본인이 직접 솔선수범해 수목장에 나선 것이다. 구 회장은 1997년 LG상록재단을 설립, 장묘문화 개선을 추진했는데 1990년대 말 고건 전 국무총리 등과 함께 사후 화장 서약을 했다. 재계에선 1998년 별세한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이 당시로는 파격적인 화장을 선택한 것처럼 구 회장의 수목장도 국내 장묘문화 개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구 회장의 부친인 구자경 LG 명예회장 역시 경기도 이천 LG인화원 뒷편에 가족 납골당을 조성하고, 2008년 아내 하정임 여사가 별세하자 화장해 납골당에 안치했다. 수목장에 앞서 22일 오전 8시30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거행된 구 회장의 발인에는 가족과 친지, 범LG 오너 일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등 100명이 참석했다. 한편, 상주인 구광모 LG전자 상무는 다음달 (주)LG 임시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로 선임되면서 그룹을 추스리고 경영 전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구 회장을 대신해 LG그룹을 이끌어왔던 구본준 (주)LG 부회장의 거취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LG의 한축인 6인의 부회장단 역시 흔들림 없이 안정적인 전문경영인 체제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구본무 회장은 생전 비리 없이 소탈하고 올곧은 경영 철학으로 많은 이들의 신뢰를 받았던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고인은 직원들의 단기적인 성과가 좋지 않을 때에도 “사람을 한 번 믿었으면 일일이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 했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영 환경이 좋지 않아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왔을 당시에도 “어려울 떄 사람을 내보내면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 재벌들과는 다른 인간적인 고인의 모습을 회상하며 재계는 물론이고 대중 역시 깊은 애도를 표하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증거 없애려고 산 밀가루가‘살인 증거’됐다
엔씨소프트 윤송이 사장 부친 살해범

     지난해 10월 26일 오전 7시30분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한 전원주택 주차장. 집주인 윤모(68)씨가 칼에 수십차례 찔려 숨진 채로 발견됐다. 숨진 윤씨는 엔씨소프트 윤송이 사장의 부친이었다. 이 집에는 CCTV가 여러대 설치돼 있었지만 주차장 쪽은 사각지대였다. 범행 도구로 추정되는 칼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마을 입구에 설치된 CCTV에서 단서를 찾았다. 이 CCTV에는 25일 오후 7시25분쯤 윤씨가 자신의 벤츠 승용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는 모습, 20분쯤 뒤 윤씨가 아닌 다른 남자가 윤씨의 차를 몰고 마을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경찰은 추적 끝에 이날 밤 11시45분쯤 이 남자가 윤씨의 차량을 길가에 세워두고 자신의 승용차로 바꿔타는 영상을 확보했다. 이튿날 오후 전북 임실군 한 국도에서 용의자 허모(42)씨를 검거했다. 허씨는 경찰 조사에서 “윤씨와는 모르는 사이이며, 주차 문제로 시비를 벌이다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주장하다가 법원의 영장실질심사 때는 “시동이 걸린 윤씨의 벤츠를 훔쳤지만 죽이진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허씨는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가 허씨를 살인범으로 판단한 근거는 무엇일까.
▶ 허씨, 살해 후 밀가루는 왜 샀나
경찰과 검찰에 따르면, 허씨는 25일 오후 7시 45분쯤 윤씨의 벤츠 승용차를 몰고 마을을 빠져나가 8시 30분쯤 한 편의점에서 물과 밀가루를 샀다. 이후 다시 벤츠를 운전해 숨진 윤씨의 집 쪽으로 갔다가 5분 뒤 다시 되돌아나오는 등 살인 현장을 맴돌았다. 마지막엔 살인 현장으로부터 5km 가량 떨어진 공터에 외제차를 버린 것으로 조사됐다. 밀가루를 왜 샀는지가 재판에서 쟁점이 됐다. 허씨는 법정에서 “피해자 차량에 묻은 지문을 없애기 위해 구입했다”고 증언했다. 차량을 훔친 것은 인정하면서도 살인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허씨가 밀가루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밀가루는 지문을 지우는 용도가 아니라 사체 또는 혈흔에 뿌려 증적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지문은 닦아내는 방법으로도 충분히 지울 수 있고, 밀가루를 뿌리면 오히려 다른 흔적이 남기 때문에 허씨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어 “허씨가 사건 발생 다음날 자신의 아버지 묘소 부근에 뜯지도 않은 밀가루를 버린 점 등을 보면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정황”이라고 했다.
▶ 사건 발생 전후 스마트폰 검색 내역
허씨가 범행을 전후해 휴대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한 내용도 유죄 판결의 근거가 됐다. 검찰은 허씨가 범행 1주일 전 휴대폰으로 ‘판교 부촌’, ‘고급빌라’, ‘고급 전원주택’ 등의 단어를 8차례 검색한 사실, 범행 4일 전 ‘수갑’, ‘호신용 수갑’, ‘수갑 파는 곳’ 등을 검색한 흔적을 찾아냈다. 특히 허씨는 범행 이튿날 아침부터 오후까지 ‘오늘의 사건사고’, ‘살인사건’, 살인’ 등의 단어를 총 66차례에 걸쳐 검색했다. 검색 도중에 ‘삸’, ‘ㅅㅏㄹ인사건’처럼 여러차례 오타를 내기도 했다. 재판부는 “호기심으로 당시 일어난 살인사건이나 사건사고를 검색했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잦은 빈도로 같은 단어를 검색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전날 피해자를 살해한 허씨가 자신의 범행이 발각됐는지 여부를 확인하고자 했던 유력한 정황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재판부는 허씨가 빚에 시달리던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살해 동기가 충분하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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