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전 세계는 평화의 시대가 왔다며 흥분했었다. 이렇게 4·27 남북정상회담으로 가닥이 잡힐 것 같았던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여정이 내달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제동이 걸렸다. 이처럼 북한이 일방적으로 남북 고위급 회담을 무기한 연기하고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하겠다는 식의 발표가 잇따르자 뉴욕타임지는 타이틀로 북한의 돌변한 태도를 언급하면서 ‘about-face’과 ‘return to form’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부상이나 슬럼프를 딛고 스포츠 선수가 복귀했을 때 주로 사용하는 표현인데, 북한은 돌변한 것이 아니고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 것임을 꼬집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북한은 연일 '문재인 정부 길들이기' 강도를 높이고 있다. 김정은이 '이해한다'고 했던 한미 연합 공중훈련인 맥스선더 훈련과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의 국회 강연을 꼬투리 잡아 남북 고위급회담을 취소하더니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취재할 남측 기자단 명단 접수를 거부했다. 이어 북한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대변인은 중국의 북한식당에서 일하다 탈출한 북한 여종업원들의 기획탈북 의혹을 제기하면서 “우리 여성공민들을 지체 없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으로써 북남관계 개선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했다. 북한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탈북자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았다.

    하지만 북한이 문제 삼은 맥스선더 훈련은 오래전부터 계획된 일정이고,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는 정부가 원천봉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은 북한도 잘 알고 있다. 탈북 여종업원 송환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북한 입장에선 눈엣가시일 수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모든 판을 깰 각오를 할 만큼 심각한 사안은 아니다.
북한의 의도는 뻔하다.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몽니를 부려 유리한 협상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남북대화와 북미 정상회담을 볼모 삼아 트집 잡는 속내는 북한 특유의 전략이다. 늘 그랬듯이 남한을 압박해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속셈이다. 이는 협상을 최대한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써먹던 북한의 고전적인 수법이다. 이번 주 방미한 문 대통령에게 미국의 '단기간 완전 핵폐기' 요구를 누그러뜨리라고 시위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것은 북의 이러한 전술이 먹혀들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북핵 문제 성과에 초조함을 드러내는 것은 한국 정부만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트럼프에게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11월 중간선거, 국내 정쟁 모두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슈이고 개인적으로는 노벨상까지 걸려 있다. 이 사실을 북이 잘 알고 이용하고 있다. 북이 갑자기 변덕을 부리자 미국 내 낙관론이 곧바로 움츠러들면서 북을 향한 목소리가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미 일부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미 본토에 대한 북핵 위협을 막는 게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그 한 예다.

    문 대통령은 2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네번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최근 북한이 한미를 겨냥해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북미 정상회담 보이콧 가능성까지 시사하면서 문 대통령의 역할이 북핵 중재자로서 어느 때보다 막중해졌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북미 정상의 핵 담판을 앞두고 두 정상이 얼굴을 맞대고 의견을 나눌 마지막 기회다. 북미 회담을 재고할 수 있다는 엄포가 북에서 나오고, 이에 비핵화를 택하지 않으면 섬멸을 각오해야 한다고 트럼프가 으름장을 놓는 상황에서 북미가 등을 돌리지 않고 회담 테이블에 마주 앉아 성공적 결실을 만들어 내도록 이끌어야 할 과제가 문 대통령의 어깨에 놓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으로부터 ‘완전한 비핵화’ 동의를 끌어내는 성과를 올렸다. 문 대통령이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 두 정상이 20분간 긴급 통화를 한 것은 북미 정상회담을 흔들림 없이 추진한다는 공동의 의지를 확인하고 북한 유인 방안을 논의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한 공동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또 한미 정상회담에 때맞춰 17개월째 공석이었던 주한 미국대사에 해리 해리스 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이 공식 지명된 것도 어느 때보다 중요한 한미 관계를 공고히 하는 긍정적 조치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술술 풀릴 것으로 기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진정성이 담겨 있는지도 여전히 물음표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문 대통령과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천명한 마당이다. 협상 디테일에서 불만이 있다고 비핵화를 향한 발걸음을 되돌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연례적인 한미 군사훈련을 트집 잡고, 2년 전 집단 탈북한 중국 식당 여성 종업원들의 송환을 요구하며 북미 정상회담 보이콧 가능성을 흘리는 것은 북한 사상 초유의 대미 직접 담판 기회를 차버리는 어리석은 일이다. 답은 비핵화에 있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진정성만 보인다면 한미 군사훈련을 비롯한 갈등 사안들은 자연스럽게 조정될 여지가 커지며 북한은 글로벌 경제망에 편입돼 번영을 구가하게 될 것이다. 세기의 만남이 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북미 정상회담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다. 1953년 한국전쟁 휴전 후 65년 만에 처음으로 이뤄질 북미 정상회담으로, 만약 이 회담이 성사된다면 트럼프는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북한 최고지도자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2017년 북한은 6차례에 이르는 핵실험과 17번의 미사일 시험 발사를 이어갔으며,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말폭탄을 주고받으며 한반도 위기설까지 고조됐다. 그러나 2018년 2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가 성사되면서 한반도 정세는 급반전 됐으며, 4월 27일에는 11년 만에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면서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교두보가 만들어졌다.

    사실 북한과 미국은 빌 클린턴 집권 당시에도 정상회담을 추진했지만, 무산된 바 있다. 당시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2000년 10월 22일부터 3박4일간 평양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을 위한 사전 준비까지 마무리했으나, 그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보수 강경파의 지원을 등에 업은 조지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성사에 이르지 못했다. 여기에 부시 대통령은 2002년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하면서 북미 관계 진전은 완전히 불투명해졌고, 뒤이은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를 내세우면서 북한과의 대화는 집권 내내 이뤄내지 않았었다.  이렇게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운전자 역할을 자청했던 문재인 정부에 이것저것 딴지를 걸고 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이번 방미 중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의 모든 핵무기와 시설을 최대한 단기간 내에 완전 폐기하고 그 경우 북에 체제 보장, 북미 수교, 경제 지원을 한다는 근본 원칙만은 절대 바뀔 수 없음을 거듭 강조해야 한다. 궁지에 몰린 쪽은 김정은이다. 북의 협상 전술에 한미가 말려들 이유가 없다. 이제 한국은 더이상 북-미간의 중재자로서가 아니라, 미국과 한 팀이 되어 북한을 싱가포르로 견인해야 한다. 이런 북한의 작태는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 비핵화 이행 과정에 들어간다 해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변덕스러운 북한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처방은 확고한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한 원칙적 대응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의 대장정을 흔들림 없이 끌고 나갈 확고부동한 카드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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