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 정진우 이사장·김영주 목사, 조지 오글 목사 방문

     상쾌한 공기와 오붓하고 청아함이 눈부신 곳, 라파예트(Lafayette)의 한 시니어 리빙에 살고 있는 아주 곱고, 맑은 눈빛의 노부부 조지 오글(George E. Ogle, 한국명 오명걸) 옹과 도로시 오글(Dorothy Ogle, 한국명 오선화) 여사. 오글 목사는 듀크대 신학대를 졸업하고 1954년 미국 연합감리교 선교사로 한국에 파견되었다. 이 두 부부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을 돕고, 기독교에서 가르침대로 예수를 따라 억울하고 힘든 이들과 자신을 나누며 헌신의 삶을 살았을 뿐인데, 어느 날 느닷없이 한국 정부로부터 강제 추방을 당하고 말았다.  상식적으로, 도덕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들 부부의 사연은 1974년 여덟 명의 젊은 부인들이 오글 목사를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의 남편들이 느닷없이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빨갱이’로 몰려 사형당할 위기에 처해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그때까지 가난하고 힘없는 공장 노동자들을 돕고, 학교에서 영어도 가르치면서 충실하게 선교사로서의 직분을 수행하던 오글 목사는 이 여덟 명 부인의 남편들과 가족들을 위해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기도 모임에서 이들을 위한 기도뿐이었다.

    그런데 당시 정부는 이렇게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는 것만으로도 오글 목사를 잡아가 심문을 하며 거짓 자백을 하도록 유도했다. 만약 오글 목사가 미국인이 아니었다면 마찬가지로 고문, ‘빨갱이’ 누명, 그리고 사형이 이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인 그에게 한국 정부가 할 수 있었던 최고의 형벌은 강제 추방이었다.  이렇게 한국을 쫓겨난 이 두 부부는 끊임없이 한국에서 일어난 이 부당한 일과 한국의 인권 실태를 알리기 위해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이들이 이렇게 간절하게 돕고자 했던 일이 바로 인혁당 사건이다. 당시 한국은 대통령이 6년을 임기로 횟수 제한 없이 계속 대통령을 할 수 있었고, 국회의원 3분의 1과 법관 전원을 임명하는 권한도 대통령에게 있었다. 또 국회해산, 긴급조치권도 대통령에게 있었다. 이런 부당한 나라의 현실을 바꾸겠다고 용기 있게 나선 이들을 잡아들여 고문하고 ‘빨갱이’로 몰아, 편파적이고 부당한 재판으로 사형선고를 내리고, 그 뒤 18시간 만에 바로 사형을 시켜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가족들은 ‘빨갱이’라는 낙인으로 인해 철저히 사회에서 매장되었던 것이다. 인터넷도 없고, 언론도 철저히 통제가 된 당시의 한국 사회에서 조지 오글 목사의 이런 희생과 노력은 그야말로 한줄기 구원의 빛이 아닐 수 없었다.  한평생 헌신적으로 한국의 민주화를 돕고, 한국과 한국인들을 사랑한 오글 목사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이 한국에 전해지면서 더 늦기 전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정진우 상임부이사장과 기독교민주화운동 상임이사인 김영주 목사가 지난 13일 이들을 찾았다. 

    한국을 떠난 지 40년이 지났음에도, 89세의 고령에 파킨슨병으로 건강이 좋지 않으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시고, 조화순 목사님 등 함께 활동하셨던 분들을 기억하며 안부를 주고받았다. 오글 목사님은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아 불편함에도 두 시간 내내 김영주 목사와 맞잡은 손을 내려놓지 않을 정도로 반가움을 표했다. 도로시 여사 역시 유창한 한국말 실력으로 한국 민주화 역사에 중요한 사료가 될만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두 분은 한국의 촛불시위가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문재인 민주정부를 세운 힘에 대해 치하했다. 또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염려와 한국인들의 전쟁에 대한 생각 또한 궁금해 했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인권을 바로 세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었던 일들도 들려주었다. 도로시 여사는 특히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를 원하지만 미국에서 한국에 대한 뉴스를 충분히 접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대단히 안타까워했다.  더불어 미국 내에 한국의 현실을 알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정진우 부이사장과 김영주 목사는 한국에서 준비해 온 선물과 모은 성금을 오글 목사 부부에게 전달했다. 또한 오글 목사님 부부가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 중에서 한국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사료로 가치가 있는 것들을 검토하고, 도로시 여사가 들려주는 말씀을 기록으로 남겼다.  만남을 마무리하면서 도로시 여사는 “이 모든 이야기들은 우리 부부의 이야기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발전에 대한 것입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아요! 아주 급합니다!” 라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오글 목사는 인혁당 사건 등을 소재로 ‘20세기 한국의 이야기’(How Long, O Lord-Stories of Twentieth Century Korea)라는 역사소설을 출간하기도 했고, 2002년 한국 노동자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한 공을 인정받아 한국인권문제연구소로부터 제5회 한국인권상을 수상한 바 있다. 넘치고 희망에 찬 기운이 잔잔한 울림을 일으켰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