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습작

   김현주 국장(이하 김): 안녕하세요, 이 기자 4월이 시작되었네요.
이00 기자(이하 이): 네, 안녕하세요. 4월 들어 첫 한풀이 시작하겠습니다.
김: 4월이고 봄이다 보니 한국에서는 '벚꽃엔딩' 노래가 또 다시 차트에 등장하고 있다던데 뭔가 상큼한 봄소식 없나요?
이: '벚꽃엔딩'이 봄만 되면 다시 인기를 끄니까 봄에 다시 살아난다고 해서 ‘벚꽃좀비’라고 하기도 하고 차트에 매년 오르니까 저작권료가 꾸준하다고 해서 ‘벚꽃연금’이라고도 하죠. 그런데 왜 매년 사람들이 다시 들을까요?(웃음)
김: 아마 노래를 들으면 그 봄에 느꼈던 좋은 추억들이 함께 떠오르니까 그런 것 아닐까요?
이: 네, 그럴 것도 같습니다. 국장님도 뭐 봄에 이 노래를 들으면 떠오르는 추억들이 있으세요?(웃음)
김: 굳이 이 노래가 아니더라도 봄이 되면 새록새록 생각나는 추억들이 있기는 하죠.(웃음) 기억들이 어떤 때는 희미해져가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도리어 더 선명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대개 봄에는 날이 풀리니 나들이도 많아지고 학교 다닐 때는 새 학년이나 새 학기도 시작하니까 아무래도 추억거리들이 쌓이기 좋은 시기죠.  
이: 네, 그래서 오늘은 그 기억이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요.
김: 관심이 가네요. 그렇잖아도 요새 뭔가 깜빡깜빡 잊는 게 많은데.(웃음)
이: 얼마 전에 정봉주 전 의원이 미투(Me Too) 운동과 관련해서 정계를 은퇴한다고 발표했는데요, 호텔에 간 사실은 신용카드 명세표를 통해 인정하면서도 솔직히 그 날 그곳에 간 기억이 없다고 했습니다. 대부분은 정 전의원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본인 스스로는 정말 기억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김: 그러게요. 그런데 정치인들은 하루에도 여러 곳을 다니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몇 년 지나서 기억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는 해요.
이: 기억을 믿을 수 없다는 연구는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 되는 것이 2001년에 대니얼 색터(Daniel Schacter)라는 심리학자의 연구가 있는데요. 기억이 잘못되는 경우를 7가지로 나눴는데 그 중에 3가지는 망각 때문에, 다른 3가지는 왜곡과 부정확 때문에, 나머지 하나는 고집 때문으로 분류를 했습니다. 예컨대,운전하러 집을 나서면서 정작 자동차 키는 두고 나온다든지 분명 아는 사람인데 갑자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든지 열번 성공하고 단 한 번 실패했는데 실패한 경우만 더 잘 기억한다든지 이런 것들입니다. 게다가 기억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확신과 실제 그 기억이 정확한가는 별로 상관관계가 없다고도 밝혔고요. 
김: 그렇네요. 저도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내가 뭘하려고 했었지 생각한 적이 여러 번 있어요. 치매가 왔나 걱정했는데.(웃음)
이: 그건 기억보다 진짜 치매 아니에요?(웃음) 그런데 기억은 왜곡되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조작될 수도 있습니다.
김: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세뇌시키고 그런 거 말인가요? 그러고 보니 기억이 왜곡되는 건 문학작품에도 종종 등장하는 소재네요.
이: 비슷한데요. 거짓기억증후군이라고 있습니다. 기억을 왜곡하거나 전혀 없었던 일을 기억해 내는 증후군인데요. 여기에 관한 두 가지 실험이 유명합니다. 하나는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교수가 한 실험인데요. 피실험자들에게 “조금 전 신호등이 노란색이었죠?”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암시를 주면 피실험자들은 빨간색 신호등을 봤는데도 나중에 노란색 신호등을 본 것으로 기억을 했다는 것이죠. 또 텅 빈 거리에 얼굴을 가린 한 남자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여주고는 “그 남자가 얼굴에 수염이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까?”라고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염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을 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수염을 볼 수가 없었는데도 말이죠.
김: 점점 무섭기까지 한데요.(웃음) 나머지 실험은요?
이: 또 하나는 2002년 스테판 린드세이 뉴질랜드 빅토리아 대학 교수가 한 실험인데요. 열기구를 타 본 적이 없는 사람 스무명에게 열기구를 탄 적이 있는 것처럼 사진을 조작해서 보여주고 그 경험을 회상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열기구를 생전 타 본 적이 없는데도 어렸을 때 타 본 기억이 있다고 이것저것 설명을 했다고 합니다. 그 뒤에 사실을 들려주었는데도 몇몇 사람들은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네요.
김: 부부싸움할 때도 잘 생각해봐야 겠는데요?(웃음) 거짓기억증후군은 왜 생기는 건가요?
이: 주로 거론되는 이유는 거짓말을 그대로 믿는 것이 뇌가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거짓말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불리하면 거짓말을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회피하고 싶을 때 뇌가 정신상태를 어린시절처럼 만들어서 거짓말을 하고 그것을 진짜라고 믿게 만든다는 것이죠. 실제로 이런 경우는 거짓말탐지기에도 진실이라고 나온다고 합니다.
김: 그러고 보니 주변에서 그런 사람들을 간혹 본 것 같기도 한데요?(웃음)
이: 거짓기억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들이 있다고 합니다. 먼저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아주 잘 포장하는 데 익숙하다고 하네요. 또한, 남들이 자기가 하는 이야기에 감동하거나 흥미로워 하는 등 반응을 잘 보여주면 무척 기뻐하고요. 대부분은 이상도 높고 욕망도 강해서 자신을 과장되게 표현하기도 한다네요. 결정적으로 거짓말에 대해 죄책감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이것들보다 확실한 것이 그런 낌새가 보이면 반박을 해보면 되는데요, 거짓기억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말에 토를 달거나 뭔가 추궁을 하게 되면 반박을 하기보다는 무척이나 화를 낸다고 합니다.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죠.
김: 뭔가 정치인들이 항상 말하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가 진심일 수도 있는 거군요.(웃음) 아무튼 기억이 깜박깜박하는 것이나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경험에 대해서 나하고는 전혀 상반된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이나 그저 나이탓인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니군요. 한편으로는 다행인데,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 의심병이 도지겠어요. 누구 말도 믿을 수 없겠는데요?(웃음)
이: 국장님이 가지고 계신 봄날의 설레는 추억도 뇌가 만들어 준 가짜일 수 있죠.(웃음)
김: 가짜라도 고이 간직하고 싶군요.(웃음) 그럼 다음 주에 만나죠.
이: 네, 감사합니다. 활기찬 4월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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