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실세’이자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인 최순실씨가 1심에서 징역 20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받았다. 중형이다. 그의 징역 20년은 살인범에게도 쉽게 선고되지 않을 정도의 긴 유기징역이다. 괘씸죄의 위력이 대단해 보인다. 이로써 태블릿 하나로 촉발되었던 국정농단 사건은 연이은 대규모 촛불시위, 유례없는 현직 대통령의 탄핵, 그리고 관계자들에 대한 구형 등 차례대로 일단락 되는 모습이다. 최씨는 앞서 대학 입시 비리와 관련된 재판으로도 징역 3년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도합 23년간 복역해야 한다. 최씨가 우리 사회에 끼친 해악과 충격은 이만큼 막중한 것이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는 13일 최씨에 대한 18개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2016년 11월 최씨의 구속기소 이후 장장 15개월 만에 1심이 마무리됐다. 법원의 선고는 검찰이 구형한 징역 25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지금까지 국정농단 사범 가운데는 가장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 그리고 재단 출연 모금이나 삼성에서의 뇌물수수 등 최씨의 공소사실 상당 부분에서 박 전 대통령과의 공모관계를 인정했다.“국정농단의 주된 책임은 헌법상 책무를 방기하고 이를 타인에게 나눠 준 대통령과 이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한 최씨에게 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최씨에게 중형을 선고한 이유로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까지 초래한 죄책이 대단히 무거운데도 범행을 부인하는 등 잘못을 반성하는 태도가 없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재단 출연 모금이나 삼성에서의 뇌물수수 등 최씨의 공소사실 상당 부분에서 박 전 대통령과의 공모관계가 인정되었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도 이르면 다음달 내려질 1심 선고에서 중형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씨는 대통령의 권력을 등에 업고 장차관과 청와대 수석과 대사 등 공직 인사에 개입했으며, 대통령 참모들을 동원해 기업에서 돈과 이권을 뜯어냈고, 대통령의 강요로 기업들이 수백억원을 출연한 공공 재단을 사유화하려 들었다. 최씨가 주도한 국정 농단으로 인해 정권의 도덕성과 국가 리더십이 붕괴했고 장기간에 걸친 국정 공백이라는 초유의 상황에 이르렀으며, 결국 대통령 파면이라는 최악의 사태까지 부르고 말았다. 그는 2016년 10월 말 처음 검찰에 출두할 때 '죽을 죄를 지었다'고 했다. 구치소에서 열린 국회 청문회에선 '종신형을 받을 각오가 돼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막상 재판이 시작되자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발뺌하면서 '미르·K재단은 내 아이디어가 아니었다'며 책임을 박 전 대통령에게 떠밀었다. 죄의식이나 책임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재판부의 입장에서는 괘씸죄가 충분히 적용될만 하다.  또 재판부는 박근혜·최순실 두 사람이 대기업들로부터 돈을 뜯어 미르와 K스포츠 재단을 설립한 데 대해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해 기업의 출연을 강요한 것”이라며 권력을 이용한 강탈 행위임을 분명히 못박았다. 또 최씨에게 죄질이 무거운데도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주변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반성도 없다며 꾸짖었다. 뇌물 액수가 72억원에 이르는 데다 나라를 뒤흔들고 대통령 탄핵 사태까지 일으킨 국정 농단의 책임을 법원이 그만큼 무겁게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재용 사건 항소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경영권 승계를 위한 청탁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다. 개별적 청탁이 없었으니 포괄적 청탁도 있을 수 없다며 최순실씨가 한국 동계스포츠 영재센터 후원금 16억원을 받은 뇌물 혐의와 미르·K스포츠 재단을 이용한 뇌물 혐의를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국정농단 수사로 재판에 넘겨진 50여명 중 1심 선고를 남겨놓은 사람은 박 전 대통령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극소수다. 박 전 대통령 재판도 3월 중 심리가 마무리돼 4월 중에는 선고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구속기간이 연장된 이후 재판을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이 최씨와의 공모관계를 명확히 인정한 만큼 더 이상 버틸 여지가 없어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모두 21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중 최씨와 혐의가 13개나 겹친다. 법조계는 최씨에 대한 중형 선고가 국정농단의 공모관계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 재판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3월31일에 구속됐다. 검찰은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했고, 뒤이어 출범한 특별검사팀은 대통령에게 수백억원대 뇌물수수죄를 추가했으며, 헌법재판소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대통령 ‘파면’을 선고했다. 그리고 파면당한지 3주만에 국가 최고 권력자에서 국정농단 주범으로 구속 수감되어 연녹색 수의를 입고 감방 생활을 시작했다. 박 전 대통령 구속 수감을 지켜본 국민의 마음은 참담했다. 최순실 사태가 터진 이후에도 이 지경까지 오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거듭되는 변명과 현실 오판으로 이를 모두 무산시켰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추가 구속 연장이 청구되면서 현재까지도 감옥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처음 구속되었을 때는 전국민을 상대로 최순실과 국정농단을 해왔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놀라서 구속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초췌한 모습이 TV에 자주 등장하면서 측은한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얘기를 가십거리고 다루는 것도 재외동포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불편했다. 그리고 도주의 우려가 없는 전직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불구속 수사를 허락하지 않았을 때도 다소 안타까운 심정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인 책임은 대통령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국정농단 사태를 지켜보면서 최씨의 국정농단만큼이나 놀라운 것은 최씨가 수년간 나라를 휘저으며 불법과 비리로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는 동안 경찰·검찰·감사원·국정원 등 국가 사정기관들은 일절 견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정기관들이 최씨 문제에 관해 눈뜬장님이었던 것은 대통령이 최씨를 감싸고 돌았기 때문이다. 재판부가 밝혔듯이 헌법상 책임을 방기하고 국민이 부여한 지위를 일개 개인과 나눈 대통령과 이를 이용해 국정을 농단한 최씨의 책임은 20년의 형량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검찰과 특검 수사를 정치보복이라 우기며 국민에게 제대로 된 사과 한번 하지 않고 있다. 거리의 태극기 부대를 호도하며, 정치보복의 피해자를 자처하기엔 드러난 죄가 너무 무겁다. 이제라도 한때나마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상식과 양심을 되찾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번 국정 농단 단죄를 계기로 이른바 정권마다 비선 실세가 등장해 권력이 사사로이 행사되는 후진적 관행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따라서 이번 국정농단 재판은 국민의 상처를 치유하고 훼손된 헌법적 가치를 재정립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법부의 책임이 더욱 막중해졌다. 사법부는 끝까지 법과 양심에 따른 엄정한 판단으로 대한민국의 상식과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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