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김현주 국장(이하 김): 벌써 2월 마지막 한풀이가 되겠네요. 2월에는 발렌타인데이도 있는데 올해는 설까지 있어서 왠지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이네요. 이 기자 오늘은 무슨 내용을 이야기해 볼까요?
이00 기자(이하 이): 한국에서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5월이 가정의 달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2월에 가족행사가 몰려 있어서 정말 한 달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습니다. 가족하니까 생각난 건데요. 한국에서는 가족끼리 찜질방에 가면 식혜와 맥반석 계란이 필수 음식인데요. 예전에는 목욕탕에 가면 이게 필수였죠.
김: 추억 돋네요. 바나나 우유 아닌가요?(웃음)
이: 네, 맞습니다. 목욕 후에 바나나 우유를 마시지 않으면 뭔가 좀 허전하죠. 사실 노란색 바나나 우유에는 바나나가 들어있지 않지만요.(웃음)
김: 그래서 오늘 주제는 바나나인가요?
이: 네, 바나나를 얘기해보려고요. 국장님 어렸을 때 바나나는 어떤 의미였죠?
김: 우리 때는 바나나가 정말 귀한 과일이었거든요. 함부로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죠.(웃음)
이: 저희 때도 그랬습니다. 도시락에 후식으로 바나나가 들어 있으면 잘 사는 집 자식이죠. TV 드라마에서도 부잣집 식탁 한구석에 꼭 바나나가 놓여 있었고요.
김: 그렇죠. 부의 상징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흔한 과일이 되어 버렸어요. 여기 미국에서는 특히 더 그렇죠.
이: 네, 얼마 전에는 온갖 것들에 바나나가 유행이었는데요. 초코파이에서부터 막걸리까지 죄다 바나나를 집어넣을 정도였죠. 그만큼 한국에서도 보편화되었습니다.
김: 이유가 뭔가요?
이: 무역 자유화의 혜택이 큽니다. 1980년대 말부터 진행된 무역자유화 협상인 속칭 우루과이 라운드가 타결되면서 1990년대 초부터 바나나가 수입자유화 품목이 되면서 수입 물량이 급증하면서 가격이 폭락했습니다.
김: 자유무역의 혜택을 톡톡히 입은 거군요.
이: 네, 그렇습니다. 사실 바나나를 가지고 세계 교역을 설명하는 이야기들은 상당히 많은데요. 일례로 미국에서 철도가 놓이고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수입하게 된 것도 바나나 때문이었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바나나의 생산과 수송을 위해서 온갖 문명기술들이 동원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김: 하긴 바나나가 보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지요. (웃음)
이: 그럴 땐 그냥 빨리 먹어주면 됩니다.(웃음) 아무튼 지금은 바나나가 무척 흔한 세상인데요. 하지만, 몇 년 지나면 예전에 우리들처럼 바나나를 먹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김: 그 전에 많이 먹어둬야겠네요.(웃음) 무역 제한 때문인가요?
이: 아닙니다. 바나나의 암이라고 하는 ‘파나마병’ 때문입니다. 이 병은 1903년 파나마에서 처음 발병되면서 붙은 이름인데요, 바나나 나무의 뿌리가 곰팡이 병원체에 감염되면서 잎과 뿌리가 갈색으로 변한 후에 말라죽게 되는 병입니다. 그런데 아주 빠르게 전염이 되고 한번 감염되면 회복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적절한 농약조차 없는 실정이라 그야말로 한번 발병하면 큰일이죠.
김: 과학기술과 농업기술이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도 정복하지 못한 분야가 많군요. 그 전에도 한번 바나나가 멸종위기까지 가지 않았었나요?
이: 맞습니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먹는 바나나 품종은 그로 미셸(Gro Michel)이라는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파나마병이 전세계를 휩쓸면서 그로 미셸 종 자체가 거의 사라졌죠. 다행히 대만에서 재배되던 캐번디시(Cavendish)라는 품종이 파나마병에 저항력이 있어서 이 품종으로 대체되었습니다. 맛은 그로 미셸이 더 좋았다고 하네요.
김: 그런데 또 문제가 생긴 건가요?
이: 이번에는 신파나마병(TR4)이라는 바나나 전염병이 말레이시아에서 1990년대 들어 발생해서 아시아 지역을 휩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병이 필리핀에서 아프리카에 이주해 온 이주노동자들을 통해서 아프리카에 상륙하게 되죠.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만, 대부분 이런 경로로 감염되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아프리카에 비상이 걸렸죠.
김: 이 사례를 보면 농작물의 품종개량이 무척이나 중요하네요.
이: 네, 그렇습니다. 이 부분이 바나나가 주는 두 번째 시사점인데요. 사실 농작물 종자의 보존과 개량은 매우 중요한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콜로라도 포트 콜린스에도 농림부에서 만든 보존센터가 있습니다. The Plant and Animal Genetic  Resources Preservation이라고 하는데요. 현대판 노아의 방주 같은 것이죠.
김: 콜로라도에 그런 게 있었어요?
이: 사실 미국이 이 분야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꽤 되었습니다. 1898년에 시작했으니까요. 그 당시 식물도입보존국(The Office of Seed and Plant Introduction)을 설립해 유전자 보존 작업을 시작하면서 세계 각지에 과학자를 파견해서 과일이나 채소나 곡물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1958년에는 관련 프로젝트를 통합해서 수집한 샘플을 국립종자저장소(National Seed Storage Laboratory)로 한데 모았는데 이 저장소도 콜로라도주의 프론트레인지에 있었습니다. 이것이 포트 콜린스의 보존센터로 이어진 것이죠. 1999년부터는 식물뿐 아니라 가축의 정보들도 차곡차곡 저장해두고 있습니다.
김: 콜로라도가 이런 분야에서 중요한 곳인 줄은 또 몰랐네요.    
이: 중국도 질세라 이 분야에 적극적입니다. 중국 정부 차원에서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과 우수한 유전적 자원 확보를 목적으로 종자산업을 육성하고 있고요. 이를 통한 경제 발전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2016년에는 중국화공이 몬산토, 듀폰과 함께 세계 3대 농화학 그룹인 신젠타를 인수했죠.
김: 종자산업이 실제로도 돈이 좀 되나요?
이: 그럼요.  금이 1그램에 4,000달러가 조금 넘는 수준인데요. 마트에서 쉽게 접하는 컬러 파프리카  종자는 가격이 금의 두 배에 달합니다.
김: 이제 땅 보고 가다가 금을 주울 게 아니라 씨앗을 모아야 겠네요.(웃음)
이: 어떤 과학자들은 고생대와 중생대에 5번에 걸쳐 일어났던 생물대멸종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인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는 이 여섯 번째 멸종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빠르게 행동을 취한다면, 이를 늦추거나, 또는 멈출 수 있습니다. 멸종이 일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서식지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내가 내 책 <절반의 지구(Half-Earth)>에서 보인 것처럼 절반의 육지와 절반의 바다로 이루어진 지구적 보호구역을 설정하자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그리고 지금 우리가 가진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종 수준의 에코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며, 또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약 천만 종의 생명체를 찾아야 합니다. 아직 우리는 겨우 2백만 종에게만 이름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환경과학은 살아있는 세계를 포함해야 하며 이것이 이번 세기 과학이 해야 할 중요한 임무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김: 아무튼 잘 해결되어서 바나나를 계속 먹었으면 좋겠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이: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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