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평창동계올림픽이 시작됐다. 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개막식을 통해 우리는 대한민국의 저력을 전세계에 보여주었다.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개막식 중 가장 주목할 것은 두가지였다. 드론 라이트 쇼와 남북한 공동 입장이었다. LED 조명을 장착한 1,200여 대의 드론은 평창의 하늘 위로 날아 스노우보더 형상을 연출하고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가 다시 오륜기를 만들어내며 개막식 하이라이트를 연출했다. 이 장면은 필자의 자녀들도 함께 시청했는데, 그들은 ‘오마이 갓’을 연발하며 IT 강국으로서의 한국을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이날 선보인 쇼는 인텔의 드론이 사용된 것으로 ‘최다 무인항공기 공중 동시 비행(Most unmanned aerial vehicles airborne simultaneously)’ 부문 기네스 세계 기록까지 경신했다. 종전 기록은 2016년 독일에서 인텔이 진행했던 드론 500대 동시 비행이었다.

    이번 올림픽의 주제인 ‘행동하는 평화’에 가장 근접한 순서는 단연 남북한 선수 공동입장이었다. 참가한 93개국 중 가장 마지막으로 입장한 남북한 선수들은 한반도기를 흔들며 들어왔다. 이에 전세계 국가 선수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쳤고,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의 친동생인 김여정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동시에 일어나 선수들이 착석할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마치 단일 국가의 선수들이 입장하는 것 같았다. 이에 대한 외신은 ‘폭발적’이었다며 호평을 이어갔다. 워싱턴포스트(WP)는 "평창 올림픽의 주제는 '행동하는 평화'지만 개막식이 준 메시지는 '희망'에 더 가까웠다"며 "추운 밤, 평창 올림픽 경기장을 수놓은 불꽃놀이처럼 낙관론이 공기를 가득 채웠다"고 전했다. USA투데이도 "이날 가장 큰 박수를 받은 주인공은 한국과 북한의 선수들이었다"며 남북한 공동입장 소식을 전했다. AFP통신은 "문재인 대통령이 개막식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역사적인 악수를 나눴다"며 "양쪽 선수들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할 때는 관중들이 일어섰다"고 전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10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며 남북한 선수들의 공동 입장에 "나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두가 소름이 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막식에는 일본 아베 신조 총리, 미국 마이크 펜스 부통령 등 각국의 국가원수격인 인물들이 대거 참석했다. 그러나 각국의 국가적 이해관계를 아예 배제할 수 없기에 팽팽한 긴장감도 감돌았다. 이중 펜스 부통령의 사려깊지 못한 행동에 대한 한국의 여론은 좋지 못하다. 펜스 부통령은 9일 저녁 개막 리셉션장에 늦게 왔다가 5분 만에 퇴장했다. 북한 대표단과 같이 할 수 없다는 강한 의사 표시로 받아들여졌다. 미국은 애초에 북한 대표단과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펜스 부통령과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아베 총리, 한정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등을 함께 헤드 테이블에 배치했고 이를 기자단에 공개했다. 펜스 부통령은 김영남 위원장과 마주 앉는 위치였다. 펜스 부통령은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영남 위원장은 자리를 지켰다. 정치적 얘기를 하는 자리도 아니고 올림픽을 위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대국으로서, 외적인 분위기까지 무시한 것이 아니냐 라는 여론이다. 또한 그는 일정동안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지속적으로 해와 이번 방한에 대한 근본 목적을 상실한 행동이라는 뭇매를 맞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 아베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위안부 문제와 소녀상에 대한 입장에 반대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못 박기도 했다. 우리 정부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남한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김영남 상임위원장에 대해 가장 정성을 들였다. 문 대통령은 삼지연 관현악단의 공연도 함께 관람하면서 2박3일간의 일정동안 북한 대표단과 다섯 차례 만나는 성의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김여정으로부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보낸 ‘평양 초청장’을 건내받았다. 남북 정상회담의 물꼬가 트였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배제한 채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할 경우, 북한이 추구하는 ‘핵 있는 평화’를 용인해주는 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 대통령의 ‘평창외교’는 북한 김정은의 남북 정상회담 제안으로 남북대화 모멘텀을 정점에 달하게 했다. 하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살얼음판을 걸을 전망이다.  당장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드러내지 않는 상황에서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4월 재개는 힘겹게 복원된 남북대화 모멘텀을 깰 수 있다.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미대화를 통해 최소한의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남북대화는 온전히 ‘평창만을 위했던’ 대화로 끝날 수 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다시 미룰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한미 군 당국은 4월 초 한미 훈련을 재개하기로 문서상 합의했다. 미 백악관은 북한이 아닌 올림픽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훈련을 3주 가량 미룬 것일 뿐,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훈련이 재개될 것이라는 입장을 거듭 표명해왔다.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 모멘텀을 이유로 훈련을 추가적으로 연기하자고 요청하면 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비핵화를 전제로 한 북미대화’와 ‘최대한의 압박’정책에 정면 반대하는 꼴이 돼버린다. 이처럼 김정은이 보낸 평양 초청장은 문 대통령에게 ‘민족이냐, 동맹이냐’를 선택하라는 통고장이 된 것이다.

     남·북·미·일이 모두 다른 생각을 하는 이 상황의 한반도 정세는 너무 어지럽다. 이날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이 김영남 등과 함께 입국했다. 이들을 맞기 위해 정부는 통일부 장관과 차관에 청와대 NSC 안보실 2차장까지 나갔다. 바로 그 시각에 펜스 부통령은 두동강 난 천안함을 찾았다. 탈북자 지성호씨, 북한에 억류됐다 숨진 오토 웜비어 부친 등과 함께였다. 전날 평양에선 미국을 공격할 ICBM이 등장하고 강릉에선 북 악단이 쇼를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의 예술 공연단의 한국 공연은 참으로 의미가 깊어 보인다. 북한의 삼지연 관현악단은 강릉아트센트와 서울 국립중앙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을 하고 돌아갔다. 이날 공연에서는 남한의 유명한 대중음악을 비롯해 남북한에게 익숙한 곡들이 대거 포함됐다. 음악으로 동질감을 느낀 자리였던 셈이다. 북한 예술단이 남한에서 공연을 한 건 2002년 8월 서울에서 열린8·15 민족통일대회 이후 15년  6개월 만이다. 이번 공연을 위해 모란봉악단, 청봉악단, 만수대예술단, 삼지연악단 등 북한예술단 5개 안팎이 연합해서 만들어진 약 140명 규모의 악단이 삼지연 관현악단이다. 이 악단은 새롭게 구성된 프로젝트성 악단임에도 안정적인 공연을 선보였다.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열린 북한 예술단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소녀시대 서현과 북한 가수들이 피날레 무대에서 함께 부른 ‘다시 만납시다’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다. 짧은 하얀색 원피스와 하이힐을 착용하고 등장한 서현은 롱 드레스를 입은 북한여성 중창단과 멋진 화음으로 공연의 마지막에 ‘통일’을 노래하며 대미를 장식했다. 객석에서 기립박수가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서현과 예술단원들은 포옹했고, 북한의 젊은 악단장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강릉에서는 이선희의 ‘J에게’,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설운도의 ‘다함께 차차차’, 왁스의 ‘여정’ 등 한국 가요와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같은 클래식, ‘반갑습니다’를 비롯한 북한 가요가 메들리로 이어졌다. 현송월 단장도 한곡조 뽑았다. 미국 대중음악이 공연에 나온 것도 이채로웠다. 평소 체제 선전에 앞장서는 현송월 단장이 이끄는 모란봉악단 등이 포함돼 우려됐던 정치색을 씻었다. 두차례 열린 북한 예술단 공연은 파격과 감동을 선사했으며, 정치색을 빼고 민족과 통일, 그리움을 앞세운 선곡으로 한민족의 의미를 전달했다. 복잡한 정치 이슈는 뒤로 제쳐둔 이러한 문화교류야 말로 진정한 교류의 실천이다. 이번 공연으로 인해 흐름이 멈춘 남북한 문화 교류의 물줄기가 다시 터지기를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