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선 80만 불법체류 청년들

          불법 입국한 부모를 따라 미국에 들어온 80만 명의 청년들이 결국 미국에서 쫓겨나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5일 불법 체류 청년의 추방을 유예하는 ‘다카’(DACA) 프로그램을 공식 폐지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 프로그램 폐지에 따른 당장의 혼선을 막고 의회가 후속 입법조치를 할 수 있도록 6개월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은 이날 법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다카 프로그램은 위헌”이라고 밝혔다. 세션스 장관은 “미국에 오려는 모든 사람을 허용할 순 없다”며 “다카 프로그램은 미국인의 일자리를 침해한다”고 말했다.  DACA는 부모를 따라 미국에 불법 입국한 청년에게 추방 걱정 없이 학교와 직장을 다닐 수 있도록 추방을 유예하는 제도다. 지난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발동해 한시적으로 이 제도를 도입한 후 지금까지 시한이 도래할 때마다 연장 조치를 했다. 국토안보부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지금까지 DACA를 신청한 불체 청년은 80만 명이 넘는다. 이중 한인은 1만8851건으로, 국가별로는 6번째로 많은데, 이  프로그램 폐지가 실행될 경우 약 7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재미 한인 청년들이 실제 추방 대상이 될 것으로 보여 재미 한인사회가 온통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는 한인 청년의 숫자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자료가 없다. 최대 3만 명에 이른다는 추정도 있다.  다카 프로그램이 적용되는 한인 청년 수는 전체 대상자 중 국적 비중을 통해 파악된 것이다. 지난 5일 LA 총영사관, LA 한인회 등에 따르면 미 이민귀화국(USCIS)의 DACA(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 프로그램 수혜자는 총 80만 명에 달하며, 한인 비중은 0.9%에 조금 못 미치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신규 승인자와 갱신자를 포함해 다카 대상이 154만 명이라는 자료도 있다. 그렇게 계산하면 다카로 공부하거나 취업 중인 재미 한인 청년 수는 훨씬 많이 늘어난다.
◇ 한인 청년 중엔 학생이 더 많은 듯
다카 프로그램은 불법 입국한 부모를 따라 미국에 들어온 청년들이 걱정 없이 학교와 직장에 다닐 수 있도록 추방을 유예한 행정명령이다. 다카로 시민권을 따낼 수는 없지만 2년마다 갱신하면 노동허가증(워크퍼밋)을 받아 일할 수 있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학생등록증과 졸업장, 동등학위 증명 서류 등이 있으면 워크퍼밋이 나오는 시스템이다. LA 총영사관 관계자는 “한인 최대 거주지역인 캘리포니아 주의 한인 다카 수혜자는 2천500명 안팎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정확한 숫자 파악은 어렵다”고 말했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다카 수혜자의 한 예로 ‘빵을 팔아서 학비를 내는 한국 출신의 젊은이’를 들기도 했다.
◇ 당장 손쓸 방도는 없어…
LA 총영사관 측도 “현재로써는 우리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내놓을 수 있는 건 없고, 미 행정부와 의회의 동향을 면밀히 파악해 한인사회에 충격을 최소화하도록 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미국 내 각 주 한인 단체에서는 그동안 다카 폐지 논의가 진행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 의회와 이익단체 등에 한인사회의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LA 소재 한인 단체의 한 관계자는 “다카 적용을 받는 한국인 청년들의 경우 대부분 학력 수준도 높고, 취업하는 직장도 전문직이나 기술직종이 많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한이 닥칠 때마다 행정명령을 갱신해줬고, 청년들은 갱신이 가능한 2년짜리 노동허가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최대 80만 명이 이 프로그램의 수혜를 받았다. 정부의 이번 결정에 따라 국토안보부는 즉각 ‘다카’ 프로그램 폐지 절차에 돌입했다. 앞으로 신규 노동허가증 신청 및 발부가 중단되나 유예기간에는 지금의 수혜 청년들에 대한 갱신은 이뤄진다. 세션스 장관은 앞으로 후속입법에 착수할 의회를 향해 “이민정책을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며 폐지입법을 촉구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트위터 계정에 “의회, 일할 준비 하라. 다카!”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다카 정책 폐지 결정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의회에서 어떤 결론이 날지는 불투명하다. 민주당 의원 전원이 다카 정책 유지를 주장하는 가운데 공화당 일인자인 폴 라이언(위스콘신) 하원의장 등 상당수 공화당 의원들도 가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뿐 아니라  뉴욕, 캘리포니아, 네바다, 콜로라도,  텍사스, 오하이오주 등 미국 전 지역에 걸쳐  거센 반발과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이미 뉴욕, 덴버, 로스앤젤리스 등  전국 대도시에서는 점점 더 많은 군중의 반대 시위와 행진이 진행되고 있다.  뉴욕에서는 중심가인 5번가를 시위대가 점거했고 맨해튼의 트럼프 타워 앞에도 시위대가 몰려 연좌 농성을 벌이다가 30여명이 경찰에 체포되었다. 또 애플, 페이스북 등 미국의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 400여 명도 경제적 타격 등을 우려하며 폐지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청원에 참여하기로 했다. 특히 각 주와 대도시 지사와 시장들은 5일 발표에 크게 반발해 앞으로 트럼프의 결정을 중단 또는 철회시키기 위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와 뉴욕주 법무장관들은 어릴 때 미국에 불법입국하거나 비자 시효가 만료되어 불법체류자 신분이 되어 있는 청년 이민자들을 추방하는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대항해 법정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욕의 앤드류 쿠오모 주지사와 에릭 슈나이더만 법무장관도 수십만명의 어린이 불체자들을 미국내에 머물러 있게 해주는 DACA의 급격한 폐지는 너무도 잔인하고 대책없는 짓이라며 트럼프 정부의 정책에 반발했다.  젊은이들도 좌절감과 분노를 표하고 있다.  뉴욕 브롱크스 칼리지에서 무용수업을 받고 있던 카렌 마린(26)은  5일 뉴스를 듣고 난 뒤 큰 충격을 받았다며,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이제 정부가 “자기들이 하는 짓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고 철회해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마이애미의  콜롬비아 출신 이민 파올라 마르티네스(23)는 뉴스를 듣고 울면서 이젠 절망이라고 말했다.  가까스로 취업 허가를 얻었는데 이것의 시효가 끝나면 “다시 그늘 속에 숨어사는” 신세로 후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재닛 나폴리타노 총장은 어린 시절 미국에 불법적으로 입국한 청년 이민들을 보호하는 법을 폐기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오도된” 정책 결정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시카고의  람 에마누엘 시장은 불법 이민 학생이 많은 한 고교에 나가서 시카고는 그들을 환영한다고 말하고  시카고의 각급 학교들은 “트럼프로부터 자유로운( Trump-free) 지대”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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