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포켓’서 40시간 버텨

         18일 이탈리아 중부를 연속으로 강타한 지진 이후 발생한 눈사태로 30여 명이 실종됐던 산간 마을 호텔에서 10명의 생존이 확인됐다.  루카 카리 소방청 대변인은 20일 “현재까지 눈사태가 강타한 호텔의 잔해 밑에서 생존이 확인된 사람은 10명”이라며 “이 중 2명은 이미 구출해 병원으로 이송했고, 나머지 8명은 위치가 확인돼 구조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카리 대변인은 생존자 중에는 어린이 3명도 포함돼 있다고 덧붙였다. 구조대는 이날 오전 매몰돼 있는 생존자의 목소리를 감지해 이들과 대화를 나눈 뒤 전기톱을 이용, 호텔 지붕과 벽에 구멍을 뚫어 오후에 모자 관계인 여성 1명과 8세 소년 등 생존자 2명을 밖으로 구해냈다.  이들은 눈사태 당시 두통을 앓는 아내에게 줄 약을 가지러 차에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뒤 재난 소식을 처음 알린 요리사 잠피에로 파레테의 아내와 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6살 난 딸도 잔해 속에서 구출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파레테의 아들이 구조대가 추가 붕괴 위험 속에 조심스럽게 뚫은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오자 대원들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감격을 표현했다. 이들은 이탈리아 중부 아브루초 주의 산간 마을에 있는 호텔 ‘리고피아노’가 거대한 눈사태로 붕괴된 뒤 눈더미와 잔해 속에서 무려 약 43 시간 사투를 벌이다 구조됐으나 건강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눈사태는 지난 18일 이 지역을 네 차례 강타한 ‘규모 5’ 이상의 지진으로 초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구조 직후 대기하던 헬리콥터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파레테와 눈물과 웃음 속에 재회했다.  구조 관계자는 생존자들이 붕괴 시 만들어진 ‘에어포켓’에 모여 있었고, 라이터로 불을 붙여 해발 1천200m에 달하는 산악 지대의 겨울 추위를 녹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투숙객 24명과 직원 11명이 머물고 있던 것으로 알려진 이 호텔에서는 눈사태가 들이닥칠 때 호텔 외부에 나가 있던 2명이 19일 구조되고, 현재까지 시신 4구가 수습돼 많으면 20명까지 아직 실종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조 당국은 당초 초동 수색에서 생존자 징후가 전혀 없고, ‘골든 타임’이 다가옴에 따라 실종자의 생환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봤으나 탐지견 등을 동원해 생존자가 머물만 한 공간을 집중적으로 수색한 끝에 생존자를 발견했다.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트위터에 “어려운 여건에서도 생명 구조에 전념하고 있는 구조대에게 감사를 전한다”는 글을 올려 실종자들의 기적적인 생환 소식에 기쁨을 표현했다. 구조대의 한 관계자는 “다른 에어포켓도 무너진 호텔 내부에 존재할 수 있고, 호텔을 덮고 있는 눈이 마치 ‘이글루’처럼 보온효과를 낼 가능성도 있다”며 추가 생존자를 찾는 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연속 지진 후 여러 건의 산사태가 발생한 아브루초 주에서는 테라모 인근에서 50대 아버지와 20대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되고, 산간 마을 35곳이 고립되는 등 피해가 속속 집계되고 있다고 이탈리아 언론은 전했다. 

트럼프와 정상회담 순서 자꾸 뒤로 밀려
초조한 일본 아베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첫 사흘, 일본 총리 관저는 조용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 20일 시정연설을 마친 뒤 주말 내내 공식 일정을 잡지 않고 도쿄 시부야구 자택에서 쉬었다. 토요일은 단골 미용실에서 이발하고, 일요일은 극장에서 할리우드 영화 ‘사일런스’를 본 뒤 어둡기 전에 귀가했다. 하지만 조용해 보이는 수면 아래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일본은 트럼프 당선 직후 주요 7개국(G7) 중 가장 빨리 움직인 나라였다. 아베 총리가 트럼프 당선 엿새 만에 뉴욕에 날아가 당선인 신분의 트럼프를 만났다. 이후 총리 관저와 외무성은 일본 언론에 “트럼프가 취임하자마자 정식 정상회담을 하겠다”며 취임 1주일 뒤인 27일이라는 구체적인 날짜까지 거론했다. 하지만 정작 트럼프 대통령이 그날 만나기로 한 외국 정상은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였다. 그다음엔 엔리케 페냐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이 31일 트럼프와 만나기로 했다. 일본 외무성 간부들은 당초 “미국 전체 동맹국 중 첫 번째나 두 번째로 회담하길 바란다”고 했지만, 영국과 멕시코가 앞서가자 원래 계획에서 한발 물러나 2월 초 아베 총리가 방미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22일 마이클 플린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야치 쇼타로 국가안보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일본은 중요한 동맹국”이라며 “트럼프 대통령도 아베 총리와 만나 의견을 나누길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바로 날짜 잡자는 얘기는 아니었다. 이튿날(23일) 트럼프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통화하며 “2월 초에 만나자”고 워싱턴에 초대했다. 아베 총리는 다시 밀린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신문은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신뢰 관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해온 만큼, (회담이 늦어지는 데 대해 일본 내에서) ‘일본을 경시하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 아베 총리가 심혈을 기울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주일(駐日) 미군기지 분담금을 얼마나 더 내라고 할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간 영토분쟁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도 불분명하다. 아사히신문은 “외무성 간부가 ‘트럼프의 외교 정책은 시계 불량(視界不良)’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어디로 튈지 앞이 안 보인다는 얘기다. 일본이 가장 불안하게 여기는 건 미·중 관계다. 요미우리신문은 “어느 날 미·중이 일본 머리 위로 손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일본에 귀띔 한마디 없이 중국과 수교한 일을 떠올리며 “이러다 ‘닉슨 쇼크’처럼 ‘트럼프 쇼크’가 오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때 “중국이 미국의 일자리를 뺏어간다”고 수없이 언급했다. 하지만 사업가 출신인 그가 정치도 사업처럼 접근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중국과 대판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좋은 조건으로 중국과 거래하기 위해 엄포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중 관계가 급진전하면 아베 정권의 외교 정책은 근본부터 흔들릴 수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가치관을 공유하는 국가’(미·일·호주·인도 등)와 ‘힘으로 현상을 변경하려는 국가’(중국)로 나누고, 전자가 한데 뭉쳐 후자를 견제하겠다는 게 아베의 외교 정책이었다. 아베 총리는 20일 시정연설에서도 “자유·민주주의·인권과 법의 지배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와 제휴하겠다”고 했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미·중이 가까워지면 지금까지 ‘가치 동맹’을 내세워 중국과 각을 세워온 일본의 입장이 어정쩡해진다. 이런 불안감은 일반 국민 사이에도 확산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이 21~2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일 관계가 나빠질 것”이란 응답이 한 달 전 34%에서 56%로 크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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