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전세계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만 예상했던 한인사회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미주 한인 일간지의 유명한 칼럼리스트나 한국의 언론, 세계의 모든 언론들이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 점쳐온 탓에 더욱 당황스럽다. 뉴욕 타임스는 클린턴 후보 당선 가능성을 84%로, 프린스턴 선거 컨소시엄과 허핑턴 포스트 등은 99%로 봤다. 워싱턴 포스트와 ABC 방송은 47% 대 43%로 클린턴 우위를 점치는 등 주요 기관 11곳 중 9곳이 클린턴의 승리를 예상했다. 본지 또한 트럼프의 승리를 예상치 못했다. 깜짝 놀란 전 세계 국가들도 저마다의 대응책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트럼프가 대선 기간 내내 강조한 미국 제일주의의 대외정책의 큰 그림은 미국이 수퍼 파워로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세계의 보안관” 노릇을 청산하고 대륙의 질서는 중국과 러시아에 넘기고 미국은 일본과 함께 해양세력으로만 군림하겠다는 강대국끼리 역할분담의 구도였다. 대한민국과 이민자는 그의 협력대상이 아니었다. 유례없는 대격전 끝에 앞으로 4년 간 미국을 이끌어 갈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되어 국민들은 새로운 출발에 대한 희망어린 기대감에 부풀어있어야 함에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기대감보다는 워싱턴 주류가 아닌 ‘아웃사이더’로서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된 그가 불러올 변화와 혁신에 대해, 경험 부족과 예측키 힘든 성정 때문에 혼란이 초래되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국민들도 많다. 트럼프의 당선 확정 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40% 가까운 미국인들이 “두렵다”는 반응을 나타낸 것이 이를 뒷받침 한다. 그만큼 이번 대선의 상처는 깊었으며 후유증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우려된다. 또, 기나긴 대선 레이스가 건전한 정책대결은 실종된 채 인신공격과 비방으로 얼룩지면서 후보들은 물론 지지자들 간에도 쉬 해소되기 힘든 앙금이 쌓였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미국 경제의 양대축인 실리콘 밸리와 월 스트리트 양쪽 모두가 우려를 표명했다. 세계적인 신생기업 육성 업체인 와이컴비네이터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내 인생에서 최악의 일이 벌어졌다”고 썼다. 실리콘 밸리는 미국 대선기간 내내 반(反) 트럼프 기조가 강했다. 전문 인력에 대한 비자발급 축소 등 트럼프의 이민 제한 정책은 세계 인재를 흡수해왔던 실리콘 밸리의 근간을 흔드는 일로 여겨졌다. 그래서 정치 자금 역시 힐러리 클린턴에게 몰아줬다. 실리콘 밸리 기업의 직원 개개인이 클린턴에게 기부한 금액은 300만달러에 달한 반면, 트럼프에게는 불과 5만달러만 기부해 60배나 차이가 났다. 그리고 트럼프는 월 스트리트 금융인들에게 강경 발언을 자주 했다. 그는 헤지펀드 매니저들에 대해 세법의 보호 아래 무자비한 일을 행하고도 무사히 빠져나가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으며, JP 모건의 제임스 다이먼 회장을 2008년 금융 위기의 주범이라고 지목하며 ‘미국 최악의 은행가’라고 비판했다.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자 가장 크게 반응한 나라는 멕시코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인 멕시코와 맞닿은 국경에 장벽 설치, 북미자유무역협정 전면 재검토 등은 모두 멕시코에 크게 불리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불체자들을 강간범으로까지 비하했던 인종차별, 자신을 반대하는 이들에게 거침없이 쏟아낸 막말의 대가, 여자들의 외모와 특히 얼굴을 보면서 돼지라고 칭하던 여성비하, 이어지는 성추문과 음담패설 녹음파일, 18년동안 연방소득세를 한푼도 내지 않은 비양심론자 등. 이처럼 미국 대통령 후보 역사상 최고의 비호감이었던 탓에 우리는 안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한국계들은 트럼프를 대통령 후보로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했다. 북한 말만 나와도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꺼내어 전세계적으로 한국을 파렴치한 국가로 매도시킨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앵그리 화이트(분노한 백인)들은 힘을 합쳐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일자리를 위협받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여기에 상당수 백인 부유층까지 가세했다. 문화적 분노랄까. 미국 지식인들은 ‘미국이 부끄럽다’고 개탄하지만 성탄절엔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고, 성조기를 향해 국가를 부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트럼프는 이들의 분노를 표로 연결했다. 하지만 배려와 관용이 사라지면 공존의 끈도 약해진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을 근심어린 눈으로 보는 것도 그래서다. 그래서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된 도널드 트럼프를 향한 국민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그러나 미국 역사상 최다 반대세력을 두었던 트럼프와 힐러리의 전쟁은 어쨌든 끝났고 승자는 결정됐다. 억만장자 부동산 재벌 출신으로, 기존에는 상상도 못하던 파격적 대선 레이스를 펼쳐온 트럼프. 공직이나 군 경력이 없는 ‘아웃사이더’가 미국 대통령이 된 것은 사실상 240년 미국사 최초의 일이다. 그리고 만 70세로 미국 최고령 대통령이 되는 기록도 세운다. 어쩌면 그의 거침없는 말과 행동이 우유부단했던 오바마 대통령보다 희망적일 수 있다는 메시지도 하나 둘 들리기 시작했다. 당장 갈아치울 것 같았던 불법체류자에 대한 대우도 범죄를 지은 자에 한할 것이고, 선거기간 내내 폐지해야 한다고 부르짖었던 오바마 케어도 당분간 유지할 뜻을 밝혔다. 미국과 같이 거대한 나라, 의회가 강력한 나라는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대외 정책이 급변하지는 않는다.

         지금 우리의 주요 관심사는 트럼프와 일본, 그리고 한국과의 관계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오는 17일, 선거 9일 만에 뉴욕에서 아베 일본 총리와 처음 회담할 예정이다. 양측간 기민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과의 관계는 아직 걱정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은 단시간에 정리되기 어려운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렇다 해도 외교와 안보까지 지리멸렬할 수는 없다. 트럼프도 한국과 한반도 정세의 맥락을 모르고 우리도 트럼프를 모르고 있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국방비 압력을 가하면 전작권을 이양받고 자주국방의 길을 찾아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트럼프노믹스’가 한국 경제에 기회인 측면도 있다. ‘트럼프판 뉴딜’ 정책이 본격화될 경우 건설·방산·제약 분야의 기업들이 사업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트럼프 시대 한·미 경제 관계는 암초가 도사린 바다와 같다. 잘만 헤쳐가면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 ‘차분’ ‘냉정’ ‘전략’만 있으면 못 할 것도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트럼프 당선자에 바란다. 첫째, 보다 신중한 자세로 이민정책에 접근해야 한다. 반이민 정서의 확산이 그의 핵심 지지층을 밀집시키는데는 요긴했을지 몰라도 미국의 정신에는 부합되지 않는다. 둘째, 특정계층의 경제적 이익을 대변하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경제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셋째, 그는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더 많이 부담할 것을 요구하면서 철수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어떤 변화이든 그것은 한국의 안보가 위협 받지 않는 상황 내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넷째, 트럼프가 비록 승리했지만 지지자와 비슷한 수의 유권자들이 그를 거부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에서 선거인단 확보 면에서 압승해 당선됐지만, 전체 득표에서는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에게 오히려 밀렸다. 트럼프의 득표수는 5천946만여 표로, 클린턴보다 약 21만 표가 적은 것으로 집계됐다. 클린턴으로서는 더 많은 민심을 얻었지만 독특한 선거제도 탓에 백악관행을 트럼프에게 내준 셈이 됐다. 이런 결과 위에 올라선 대통령이기에 정말 ‘모두의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두루두루 미국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합리적인 정책을 만들고 추진해 나가는 대통령이 되어야 할 것이다. “통합이 없이는 통치도 없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않는 겸손한 권력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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