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강원도의 한 주택에서 우울증을 앓고 있던 50대 남성이 번개탄을 피워 숨진 채 발견됐다. 아들로부터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과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는 거실바닥에 엎드려 숨져 있었다. 집안에는 타다 만 번개탄과 함께, 가족들에게 먼저 하늘나라로 가서 미안하다는 유서가 남겨져 있었다. 유서의 날짜로 볼 때 그는 숨진 지 닷새 정도 지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올 봄에는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지하에 살고 있는 50대 남성이 화장실에 번개탄을 피워놓고 자살을 했다. 보증금 200만원에 월 25만원짜리 지하 단칸방에서 홀로 살고 있던 이 남성은 어머니가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시자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지난해 수원의 한 50대 부부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해 동반자살했다. 아들이 발견을 했을 때 어머니는 목을 매 숨져 있었고, 아버지는 왼쪽 손목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고. 아들은 아버지가 희망이 없어 죽어야겠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진술했다.  대한민국의 50대가 우울하다. 한국 국민 가운데 삶의 만족도가 가장 낮은 세대가 50대이며, 여성보다 남성이 삶에 불만이 많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취업이 안돼 궁여지책으로 대학원에 진학한 아들의 뒷바라지를 해야 하고 딸 시집도 보내야 한다. 요양병원에 모신 어머니도 보살펴야 한다. 회사에선 언제 쫓겨날지 모르고, 늘어나는 약봉지에 우울증까지 겹쳤다. 내가 무너지면 가정이 무너지는데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노후준비는 생각도 못한다. 우리 사회의 버팀목이라 할 수 있는 중년남성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2015 보건복지정책 수요조사 및 분석’ 보고서를 보면 20대 이후 삶의 만족도는 나이가 들수록 낮아지다가 50대에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가는 ‘U자형’ 변화를 보였다. 50대 이후 만족도가 다시 올라간 것은 욕심을 버리고 그럭저럭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기로 스스로를 위로한 결과일 것이다.  보고서는 보건복지 수요와 정책에 관한 국민 인식을 살펴보기 위해 무작위로 1천명에게 전화를 걸어 삶의 만족도, 걱정거리 등을 묻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50대의 삶의 만족도가 가장 낮다는 점은 베이비부머 세대인 이들의 애환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결과”라고 전한다. 지금 가장 큰 걱정거리는 건강이었고 자녀교육이 그 다음으로 많았다. 20대의 경우 일자리가 가장 큰 걱정거리라고 답했다. 동시에 20대가 가장 답답한 나이라는 통계도 함께 나왔다. 20대, 터질 것 같은 팽팽한 젊음, 어느 쪽으로든 모두 열려 있을 것 같은 가능성, 이성을 바라보는 순수한 떨림까지 가진 20대는 그 나이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그런데 설문조사에서는 20대가 가장 답답한 나이라고 했다. 그리고 20대의 부모가 되는 나이인 50대는 우울하다. 대학만 입학하면 부모의 임무가 끝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뒷바라지를 해서 간신히 대학을 보냈더니 여전히 영어에다 컴퓨터, 기술학원 등 끝이 없이 이어지는 자격증 시험에다 해외연수까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50대들이다. 이들이 ‘고지가 바로 저기인데…’ 하면서 버텨온 세월이 무색하게도 자녀들은 ‘취업’이라는 더 거대한 산맥에 가로막혀 있다. 50대는 이런 20대를 지켜보면서 ‘얼마나 더 남았을까’, 정말 등이 휘어질 것 같은 삶의 무게를 느낀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한국에서는 50대의 우울증 환자가 최근 5년새 급증했다. 얼마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우울증 환자 중 50대 이상이 전체의 60%가 넘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50대 이상 남성의 경우 명예 퇴직 등 사회적 압박이, 여성의 경우 폐경으로 인한 심리적 허무감 등이 우울증 환자 급증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런 가운데 50대들을 더욱 우울하게 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TV나 CF에서는 당신의 노후를 위해 10억이 있느냐고 묻는다. 거기다가 친절하게도 보정자산을 계산해 주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대부분은 노후 준비는 꿈도 못 꾸었다. 구체적인 은퇴 계획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다는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도 안 된다. 10명 중 7명이 집 한 채밖에 없다. 그중 1억 이상 빚을 진 사람이 17%나 된다.  50대의 어깨에 얹혀진 짐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전에는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 부모를 돕는 선순환 구조가 있었지만, 지금은 50대가 노부모뿐만 아니라 20~30대 자녀까지 역부양하는 상황이 되었다.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효도 받기를 포기한 처음 세대를 뜻하는 ‘막처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결과적으로 이 시대의 50대는 이전 세대보다 더 많은 경제적인 부담을 지어야 하며, 그 책임을 다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부담은 전보다 커졌지만 가족내의 위치는 전보다 더 약해졌다. 여기에다 50대의 품격을 지키려면 무슨 캐슬이나 빌리지에 살아야 하고, 아내를 위해 때만 되면 해외여행 비행기 티켓을 안겨줘야만 진정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 된다. 또, 남편이 돈 때문에 잠 못 이룰 때 ‘어제 적금 탔어요. 당신 쓰세요’ 하면서 돈다발을 내놓는 아내가 내조의 여왕으로 인정받는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30년 가까이 정말 마음이 메마르고, 온몸이 푸석푸석해지도록 일해온 50대는 오늘도 ‘나는 정말 무능한 부모이고, 남편이며, 아내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50대들이여, 나이에 당당해지자. 다른 사람 나이 빼앗아 먹고 50대가 된 것도 아니고,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과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는가. 가족들에게 물질적으로 못해준 것들에 대한 아쉬움에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고, 그들에게 준 크고 넘치는 사랑에 자부심을 가지길 바란다. 얼마전 한 지인이 들려준 이야기다. 지인은 오랜만에 갓 대학을 졸업한 아들과 치맥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눌 생각으로 집에 일찍 들어갔다고 한다. 거실에 음식을 펼쳐 놓고 아들을 불렀는데, 아들이 하는 말 “아빠 치킨 몇 조각 드실 거예요?”였다. 선배는 얼떨결에 “어, 한두 조각 먹지”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말이 끝나자마자 아들은 치킨 두 조각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자기 방으로 들고 가더라는 얘기였다. 요즘 집집마다 자녀가 하나 혹은 둘인 경우가 많다 보니, 부모들은 갈수록 외롭다. 이 와중에 중년들은 점점 행복한 노후를 사는 방법을 잃어가고 있다. 그 결과로 그들의 인생은 우울하고 허무하다. 하지만 “열심히 일한 그대, 떠나라” 라는 어느 광고의 카피처럼, “힘내라 중년! 그동안 고생했다”고 외칠 필요가 있다. 남들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돈이 많이 드는 것을 찾을 필요도 없다. 주변에서 활력거리를 찾아 다시 한 번 배터리를 충전해보자. 50대야말로 우리가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100세 시대의 ‘진정한 중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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