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함께 오랜 세월을 일하면서 참언론인이 어떤 것인지를 배웠다.
손해에 연연하지 않고 신념을 지킨 그녀의 신문은 결국은 빛을 발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시작은 크지 않았다. 기존 일간지가 두개, 주간지가 다섯개나 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또다른 주간지의 발행을 반기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신문업계를 남자 발행인이 점유하고 있는 가운데 기자 출신의 여자 발행인이 뛰어드는 것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곱지 않았다. ‘저 신문이 6개월 안에 망하지 않으면 내 성을 간다’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고, 거기에 동조하며 사람들은 ‘몇 달이나 가나 보자’며 낄낄거렸다.  나는 주간 포커스에서 기자로서 가장 오랫동안 일한 직원이다.  김현주 사장과 함께 울고 웃으며 보냈던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그의 신문을 향한 노력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주간 포커스 신문사를 창간하면서 월급을 받으며 기자 생활을 하던 것과 직접 신문사를 차려서 신문을 발행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경영을 해본 적도 없던 사람이 직접 경영에 나서게 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적자가 누적되고 생활고에도 시달렸다. 그런 상황에서 김현주 사장은 당시 직원 월급을 하루도 늦은 적이 없었다. 자신의 집 페이먼트 낼 돈을 직원 월급으로 줄 정도였다. 인쇄소에 지급해야 하는 신문인쇄비 역시 적자에 허덕이면서도 단 한번도 밀리지 않았었다. 당연히 인쇄소 기계가 고장났거나 천재지변으로 인한 사정을 제외하고 신문이 제때 나오지 않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김현주 사장에게 있어서 신문은 사명이자 독자와의 약속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신념이 그대로 반영된 신문은 말 그대로 신뢰의 상징이 되었다. 동네 신문이라고 인터넷에서 연예기사 뽑아서 대충 넣고 광고만 잔뜩 실어서 만드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지역 신문이니 지역 소식을 넣어야 한다며 한인 커뮤니티 행사를 빠짐없이 취재해 기사를 작성했고, 독자 투고, 기자 실명제 등을 이용해 더 신뢰가는 기사를 싣는데 무게를 두었다.

         한인 커뮤니티 소식에만 국한하고 번역 기사 정도로 주류사회의 동정을 싣던 기존 한인신문들의 틀은 영어와 한국어 실력이 뛰어난 기자를 채용해 주류사회 동정도 직접 취재하기 시작했다. 미 상하원 정치인들을 비롯해 교육관계자, 덴버와 오로라 시장 등은 한인신문이 있는 줄도 몰랐다며 놀라워했고, 주류 방송사들과 언론사들과의 교류를 통해 취재 경쟁도 당당히 펼쳤다. 신문은 광고만 내주고 광고비만 받으면 된다는 기존 한인 커뮤니티의 고정관념도 주간 포커스가 서서히 깨기 시작했다. 한인 커뮤니티에서 규모가 작은 행사를 개최할 장소가 늘 마땅치 않아 식당이나 공원을 전전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주간 포커스 문화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주간 포커스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매주 신문기사를 업데이트했고, 전자신문을 발행해 제때 신문을 얻지 못하는 독자들이나 멀리 사는 독자들도 쉽게 주간 포커스 신문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으며, 최근까지는 라디오 방송까지 영역을 펼쳐 한인들에게 좋은 한국 노래와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매주 직원회의를 통해 취재할 내용을 점검하고 기획 기사 등 취재할 만한 아이템을 함께 고심했다. 신문은 아이들이 한글을 공부할 수 있는 최고의 교과서가 되어야 한다며 철저한 교정 작업을 통해 작은 실수나 오타도 용납하지 않았다. 기자로 일하면서 때로는 김현주 사장의 그러한 프로 근성이 몸서리 쳐질 만큼 혹독했지만, 그만큼 잘 나온 신문을 보면서 늘 잘 키운 자식 내보내듯 참 뿌듯했다.

          한번은 신문에서 서머타임 기사가 잘못 나간 적이 있었다. 크지도 않은 작은 기사였다. 직원들은 신문 수천부가 이미 배달될 준비를 마쳤으니 그냥 배달하고 다음주에 정정기사를 내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김현주 사장은 ‘신문은 신뢰가 제일 중요하다. 이 기사를 보고 단 한명이라도 누군가가 실수로 시간을 조정해서 중요한 약속을 펑크된다면 큰 일’이라며 급하게 스티커를 공수해 수천부의 신문에 일일이 스티커를 붙였다. 또 한번은 편집 디자이너의 실수로 절반이 지난주 신문 내용으로 채워지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김현주 사장은 수천달러의 인쇄비 손해를 감수하고 눈물을 머금고 잘못 나온 신문들을 모두 폐기처분하고 다시 신문을 인쇄했다. 마지막으로 기억되는 부분은 무료 광고지면인 벼룩시장에 구인광고가 한 개 들어가지 않아 인쇄를 중단하고 1500달러의 손해를 감수한 일이다. 주위에서는 무료광고인데 다음주에 실으면 된다고 했지만 김 사장은 급하게 요청한 내용이었고, 두번이나 신문사에 부탁했기 때문에 독자와의 신뢰를 져버릴 수 없다 면서 재인쇄를 강행했었다.   그와 함께 오랜 세월을 일하면서 참언론인이 어떤 것인지를 배웠다. 손해에 연연하지 않고 신념을 지킨 그녀의 신문은 결국은 빛을 발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다른 일간지와 주간지가 차례로 문을 닫을 때도 주간 포커스가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제대로 된 신문을 만들겠다는 김현주 사장의 의지와 뚝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도 누군가는 ‘신문이 거기서 거기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주간 포커스가 어떤 노력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모르는 사람, 제대로 된 신문이 어떤 것인지를 볼 줄 모르는 극소수의 사람의 경솔한 발언일 뿐이다. 주간 포커스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노력의 질이 다르니 월등히 나은 신문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주간 포커스는 계속 발전했다. 최다부수, 최다 페이지, 깨끗한 인쇄상태, 너저분하게 낱장낱장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비싼 돈을 내고 스테이플 작업에 트리밍 작업까지 한다. 인쇄비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500부 정도를 줄이는 것이 어떻겠냐는 건의에도 “신문이 남아돌아도 신문이 없어서 못 가져가는 독자들의 수를 줄여야 한다”며 최다발행부수를 고집했다. 이것이 주간 포커스의 저력이다. 10년이 그냥 쌓인 세월이 아니다. 앞으로도 주간 포커스는 계속 발전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김현주 사장은 여전히 타협할 생각이 없는 고집불통 외골수이기 때문이다. 6개월 안에 안 망하면 성을 갈겠다고 한 사람은 자진해서 성을 갈았기를 바란다. 주간 포커스의 창간 1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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