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복학하여 회화 시간에 난생 처음 원어민 교수와 말하기를 하면서 나는 언제였냐는 듯이 어색하지 않게 영어 말하기가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당시에 그 원어민 교수가 지도하던 회화 그룹이 있었는데 과선배의 소개로 가입하게 되었다. 전부 6-7명이었던 그 멤버들은 일부 영문과 학생을 포함한 타과의 쟁쟁한 멤버들이라고 하였다. 당시 토플의 최상위대 점수인 600점을 받은 영어 도사라는 학생도 있었다. 당시 나는 토플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터라 그 사람이 그저 엄청 대단한 영어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첫 모임에서부터 원어민 교수와 자유롭게 대화를 이어가는데 아무도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특히, 토플 600점을 받았다는 사람이 침묵하는데 대하여 나는 상당히 불편함을 느꼈다. 영어 도사가 보기에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주절거리는 나의 영어가 얼마나 가소로우면 한 마디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많이 불편하고 불쾌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말을 하지 않고 있으면 그냥 조용할 뿐 아무도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그것도 불편하여 나는 할 수 없이 대화를 다시 시작하곤 하였다. 대부분의 상황이 나도 모르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서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말들로 대화를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언제든지 입만 벌리면 거침 없이 쏟아져 나올 수 있는 4500여 마디의 말들 가운데서 적합한 표현들을 서로 엮고, 필요한 단어만 집어넣어 뱉어내기만 하면 되었다.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 다음 주 모임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반복되었다. 나는 괜히 어줍짢은 영어로 그 그룹에 가입하여 이제까지 잘 해오던 분위기를 깼다는 생각에 고민이 깊었다. 세 번째 모임도 같은 현상이었다. 정말로 아무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하고 원어민 교수만 떠들고 있었을 뿐. 모임이 끝나자 토플 600점을 받았다는 경영대 학생이 나에게 물어왔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회화를 잘할 수 있나요?’라고. 나는 순간 조롱당한 기분이었다. 곧 그 질문이 조롱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로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결국 그 회화 그룹은 내가 가입한 지 한 달 만에 깨졌다.

         이것이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만 4년 만에 대학캠퍼스에 발디뎠던 첫 달에 있었던 일이었다. 이때까지 4년 동안 했던 영어공부 시간은 그냥 유행가를 듣듯이 가볍게 한 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돌아다녔던 자투리 시간을 모두 합쳐 여유있게 계산한다고 해도 하루 평균 3시간씩 약 4천5백여시간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어 일기 쓰기 및 초기의 말배우기와 읽기 과정 외에는 말배우기와 읽기 및 단어 외우기 등은 대부분 출퇴근 시간이나 휴식 시간 및 혼자서 이동할 때 등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일상생활 속에서 하였기 때문에 실제로 별도의 시간을 정해놓고 공부한 경우는 없었다. 퇴근 후의 알짜배기 시간에는 항상 고시 과목 (나중에는 대입 과목) 공부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영어공부를 즐길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수시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몰입하는 방법이어서 정신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많은 부담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4천5백여 시간 가운데 언제 영어 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습득하였는가에 대하여 정확한 대답은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내 생각에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6-7개월 정도 되면서 거침 없이 몇 페이지씩 쓸 수 있게 된 시점에는 아마도 일상생활을 영어로 충분히 해낼 수 있을 정도로 습득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당시 상황으로 보아 생활영어로 말배우기를 시작하여 약 3천 ~ 3천5백여 마디를 여러 번 반복하여 상당한 수준으로 익혔던 약 30개월 정도의 시점이다. 이어폰을 꽂고 건성으로 듣고 다녔던 자투리 시간까지 모두 합하여 하루 평균 3시간씩 계산하여도 약 2천7백여 시간만에 영어로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습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나의 개인적 환경과 상황에 제한되는 것이다. 사람과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내가 당시에 환경 생활영어가 아닌 BTM 영어와 같이 실생활에 아주 밀착된 가깝고 친한 사람들의 영어로 말배우기를 했었다면 분명히 더 효율적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AFKN으로 시작된 고급 듣기 영어

          내가 고급 듣기영어를 시작한 동기도 우연한 것이었다. 복학 후 첫 학기 어느 날 선배의 자취집에 가서 밥을 먹게 되었다. 선배의 방에는 방문을 열어 놓으면 부엌에서도 볼 수 있도록 작은 TV가 있었는데 AFKN이라고 하는 영어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그 선배는 나에게 그 방송을 알아들을 수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난생 처음보는 영어 방송과 느닷 없는 질문에 당황함과 챙피함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 선배는 ‘영문과라면 저정도는 들어야죠’라고 했다. 그래서 당시 입주 과외를 했던 나는 여름 방학 내내 학생을 가두어 놓고 공부를 시킨 바람에 성적이 좋아져서 받은 보너스로 휴대용 TV를 사서 매일 AFKN 방송을 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습관적으로 귀에 꽂고 다니던 생활영어 대신 10분 미만 분량의 AFKN 뉴스를 녹음하여 귀에 꽂고 다니기 시작하였다. 하루 1 ~ 2시간씩 이동 시간에 듣는 방법으로 6 ~ 7 개월이 지나면서 AFKN 방송의 뉴스가 대부분 쉽게 들리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AFKN을 비교적 쉽고 빠르게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영어를 상당히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기에 영어의 소리에 충분히 익숙해졌고, 대역 소설을 통하여 상당히 높은 수준의 어휘력을 확보하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떤 프로그램은 너무 쉽게 들려서 이것이 정말 미국인들을 위한 영어 방송인지 의아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단어만 막히지 않으면 얼마든지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대학 1학년때부터 3학년까지 영자 신문사에서 일을 했지만 한 달에 한 번씩 발행하는 영자 신문에 몇 쪽의 기사를 쓰는 것도 혼자서 영어로 일기를 매일 쓰는 것에 비하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3학년 때는 편집국장으로 매일 아침 1시간씩 영어로 편집 및 일상 업무 회의를 진행하고,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영어로 발표하고 설명하는 시스템을 운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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