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섭리에 어긋난다는 이유 때문에 사랑하지만 사랑한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동성애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동성애를 찬양하기도 했지만 기독교의 영향으로 봉건적인 중세시대에는 동성애가 금기시되었다. 하지만 요즘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져 커밍아웃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동성애도 이성간의 사랑처럼 이해되고 보호받고 있는 것이다.
비밀스럽고 금지된 욕망인 동성애라는 소재는 그래서 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림으로 표현되어 왔다.
그 중 대표적인 작품 이 귀스타프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의 ‘잠’이다. 이 작품은 동성애를 대담하게 표현했다. 여자들의 동성애를 주제로 작품에 다룬 것은 남자들의 관음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다.
19세기에는 남자들 간의 동성애를 국가 기강을 흔드는 정신병으로 취급했지만 여자들끼리의 동성애는 어느 정도 용납했다. 여자들을 사회에서 장식품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19세기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기 시작한 여자들의 동성애에 대해 쿠르베는 관심이 많았다. 그는 은근하게 동성애를 암시하는 작품을 그리기도 했지만 대담하고 사실적으로 그린 이 작품을 처음부터 대중에게 공개할 생각이 없었다. 대중에게 그림으로 인해 비난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보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 정도로 대담하게 동성애를 표현했다.
그래서 그는 신화나 전설을 빌려오지 않고 적나라하게 그렸다. 모든 그림은 사실적으로 그려야 한다는 그의 신념에 따른 것이다.
이 작품에서 분명 레즈비언 커플로 보이는 검은 머리의 여인과 금발의 여인은 서로 끌어안고 잠에 빠져 있다. 잠에 취해 있지만 붉게 상기된 뺨과 여인들의 엉킨 다리는 성적 관계를 암시한다. 흐트러진 머리, 침대 위에 떨어진 진주 목걸이, 구겨진 침대 시트 위의 머리핀은 사랑이 끝나고 휴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침대 옆 탁자에는 물병이 놓여 있고 침대 뒤에 있는 콘솔에는 꽃을 담은 화병이 있다. 화려한 소품들은 사랑하고 있는 두 여인이 부유층 여성임을 나타내고 있다.
당시 미술애호가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주제는 누드화였지만, 현실 속 여성의 누드를 표현하면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비난을 받지 않으면서 에로틱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역사 속의 인물이나 신화의 인물을 빌려서 표현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작품은 1866년 터키 제국의 대사이자 미술애호가였던 칼릴 베이가 주문하여 제작했다. 동성애가 당시 문학작품 속에서는 종종 다루어졌지만, 그림으로 표현하기에는 사회적으로 제약이 많았다. 칼릴 베이는 에로틱한 그림을 좋아해 그런 그림들을 수집했고, 쿠르베의 작업실을 방문한 칼릴 베이는 신화 속 여자들의 동성애를 표현한 작품 ‘질투심 많은 프시케를 쫓는 비너스-소실됨’을 보고 그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쿠르베는 칼릴 베이가 소장하고 있던 앵그르의 ‘터키탕’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제작했다.
쿠르베는 칼릴 베이의 사치스러운 기호에 맞추기 위해 탁자 위에 고급스러운 물병과 잔, 진주 목걸이, 동양풍의 화병을 화면에 그려넣었다. 두 여인의 도발적인 자세도 칼릴 베이의 특별한 취향을 반영한 것이다.
그림 속에 있는 관능적인 자세의 금발 여인이 화가 휘슬러의 정부 조안나 히퍼다. 관능적인 그녀는 최고의 창녀 같은 분위기를 가졌다고 알려져있다. 쿠르베는 조안나 히퍼와 사랑을 잊지 못해 그녀를 모델로 한 작품 몇 점을 남겼는데, 그는 사교계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보다는 조안나 히퍼처럼 퇴폐적이고 관능적인 여인에게 매력을 느꼈다.
19세기 사실주의의 대표적인 화가인 쿠르베는 “내가 보지 않은 것은 절대로 그릴 수 없다”고 말할 만큼 그림을 사실적으로 그리기로 유명하다. 일찍이 명성을 얻었으나 지나치게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말년에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화가로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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