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속옷에 향수까지 뿌렸는데 밝히는 여자 취급만 하더라고요.”
“아내가 좀 적극적이었으면 해서 야동을 함께 보자고 했다가 변태라고 망신만.”
진료실을 찾은 섹스리스 부부로부터 잡지나 어설픈 비전문가의 이런 조언을 따라 했다가 오히려 낭패만 봤다는 푸념을 들으면 필자는 숨이 턱 막힌다. 섹스리스는 그런 단순한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1995년 라우만(Laumann) 박사 등 미국 연구(NHSLS)에 따르면 1년에 10회 미만의 잠자리를 갖는 섹스리스 부부가 20%에 달한다. 우리나라 일부 통계를 보면 섹스리스 부부 비율은 30%에 육박한다. 필자가 접한 또 다른 차이점은 미국의 경우 성기능장애로 인한 섹스리스가 상대적으로 많고 부부가 서로 공감하에 자발적으로 치료 요청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큰 장애 원인도 없이 배우자와 섹스를 별로 하고 싶지도 않고 재미도 못 느끼는 데다 상당수가 치료도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복잡하고 심각한 원인, 즉 심각한 성기능장애나 갈등, 뿌리 깊은 성격적 문제보다 우리 문화에서는 부부 사이의 열정과 성적 다양성을 이끌지 못해 섹스리스로 빠진 경우가 가장 흔하다.
“별 재미가 없는데 어쩝니까. 성적 매력도 떨어지고 설레지도 않고.”
부부 사이에 오누이나 친구 같은 친밀감은 그나마 좀 있는데 열정이 식어버린 것이다. 성문제 치료자들은 부부 사이의 정서적 친밀감에 어떻게 ‘에로스-열정과 쾌락’을 덧보탤지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부에게 친밀감과 열정은 따로 노는 게 아니라 ‘성적 친밀감’ 또는 ‘성적 유대감’이란 표현으로 통합될 수 있다. 이런 성적 친밀감은 신선함, 즉 성적 다양성으로 지속될 수 있다. 매일 그 나물에 그 밥으로 무슨 음식 맛이 있겠는가. 그런데 성적 다양성이란 말에 고작 파트너를 자주 바꾸면 된다는 식의 철없는 생각은 부부에겐 죄악에 가깝다. 또한 체위를 바꾸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색다른 속옷이나 스킨십 한 번으로 바뀔 것이란 생각도 틀렸다.

    기본적으로 성은 성으로 푸는 게 맞다. 한국 사람들은 성이라고 하면 너무 ‘삽입’ 성행위만 생각한다. 성행위는 모든 스킨십을 포함하며 삽입 성행위는 마무리 작업일 뿐이다. 성적 다양성을 확보한 부부를 보면 서로 대화하고 애무하고 때로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핥고 어루만지고 입 맞추고, 깨물고, 쓰다듬는 이 모든 행위가 존재한다. 또 성을 엄청난 쾌락이나 의무 방어전이라기보다는 즐겁고 새로 호기심도 자극하는 편한 놀이로 여긴다. 부부 사이에 이런 원초적인 행위는 행복의 지름길이지 퇴폐적이고 변태적인 게 아니다.
비싼 돈 내고 멀리 여행갈 필요도 없이 우리 집 침대를 휴양지의 침대라 여기고, 귀가 시 일상의 고민과 스트레스를 철저히 차단하는 것도 도움 된다. 부부가 함께 하는 휴식은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을 헤매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 휴식의 보금자리인 침대에서 즐기는 약간의 변형을 가미한 성생활은 정서적 안정뿐 아니라 건강의 활력소다. 섹스리스는 부부라는 근본적인 인간관계의 부실이자, 불행의 씨앗이며 심신의 건강과 안정이 취약해지고 있다는 적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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