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나베 부인ㆍ왕여사ㆍ김여사…

    '와타나베 부인'은 일본에서 낮은 금리로 엔화를 빌려 외화로 환전한 뒤 해외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일본의 중.상층 주부 투자자를 지칭하는 용어다. 한국의 김씨.이씨처럼 일본에서 흔한 성인 와타나베에서 유래했으며 지금은 주부 투자자에서 일본의 개인 외환투자자를 통칭하는 용어로 확대돼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근래들어 원조 와타나베 부인에 이어 중국의 '왕여사'와 한국의 '김여사'도 자국의 저금리를 이용해 해외투자에 나서고 있다. 같은 개념으로 미국의 '스미스 부인' 유럽의 '소피아 부인'도 있다. 정치 사회 뿐만 아니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도 여성들의 투자 파워가 세진 것이다. 각국 '여사'들의 투자 실태를 모아봤다.

▶일본의 와타나베 부인= 일본은 1990년대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불황탈출을 위해 적극적인 저금리 정책을 펼쳤다. 이 때문에 제로금리라고 불릴 정도로 이자율이 떨어졌다. 당시 일본금리가 0.5%일때 미국 금리는 4.75%에 달했다. 엔화를 달러로 바꿔서 은행에 넣어두는 것만으로도 4.25%의 수익을 벌 수 있는 구조였다.
평범한 가정주부나 일반 직장인들이 엔케리를 이용해 해외투자를 많이 있다. 일본은행에서 0.5%로 돈을 빌려서 이자율 7~8%에 달하던 뉴질랜드의 은행으로 계좌만 옮겨놓아도 고수익을 올렸다.
와타나베 부인들이 주로 거래하는 시간은 물론 낮보다는 밤 시간대다. 가사일로 바쁜 낮 시간대에서 해방된 밤 9시에서 12시까지가 와타나베 부인들의 주된 활동 시간대다. 물론 이 때는 런던금융시장이 열리는 시간이다.

    와타나베 부인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시기는 2005~2007년 엔저가 지속될 때였다. 주로 엔을 팔고 달러를 사는 데 베팅했다. 한때 그 숫자는 300만명에 달할 정도였다.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평화는 이들 와타나베 부인들에게 달려 있다고 쓰기도 했다.
일본은 와타나베 부인 덕에 2008년 정부의 외환보유액을 별로 사용하지 않고 세계 금융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와타나베 부인들이 해외 투자자산을 처분해 일본으로 가져오는 바람에 일본 엔화가치를 지키고 외환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지난 한해 와타나베 부인이 팔고 산 외환 규모는 200조엔에 달한다고 한다. 도쿄 외환시장 거래량의 약 30%를 차지한다. 투자은행 JP모건은 '세계 금융시장에 흘러다니는 와타나베 부인들의 돈이 40조엔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일본 아베노믹스의 금융완화정책에 힘입어 와타나베 부인이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이다. 벌써 거래 규모가 일본 증시 시가총액의 1.5배가 넘었다고 한다.
와타나베 부인들이 최근 선호하는 투자처는 멕시코다. 이들은 최근 경제가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미국 경제와도 관계가 깊은 멕시코의 페소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본투자신탁에 따르면 일본 투자업계의 멕시코 페소 자산 잔액은 올 들어 1820억엔에서 2970억 엔으로 증가했다. 엔화 가치는 5월말 달러에 대해 11.24% 하락했지만 멕시코 페소 가치는 13.92% 올랐는데 페소 가치가 상승한 이유 중 하나가 일본계 투자자금 유입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문가들은 와타나베 부인들의 페소화 표시 주택 채권에 대한 수요가 강해 멕시코 자산으로의 자금 유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 자금 중 대부분은 호주에서 옮겨간 것이라고 FT는 전했다. 와타나베 부인들 사이에서 호주 달러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있다. 호주 달러 자산 잔액은 지난해 12월 4조7000억 엔에서 지난 4월 4조5000억 엔으로 줄었다. 호주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2.75%로 인하하면서 투자 매력도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아울러 중국과 일본의 영토 분쟁으로 중국 관련 리스크에 대한 일본 투자자들의 우려가 재부각 된 점도 원인이다. 호주 달러는 최대 원자재 수출국인 중국의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중국의 왕여사= 중국발 왕여사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중국이 해외 헤지펀드의 국내영업 허가를 시작하면서 중국의 엄청난 돈이 외국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올해 베이징 춘계 주택전시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부스는 구제금융으로 떠들썩했던 지중해의 섬나라 키프로스 전시관이었다. 그리스 억양이 강한 30대의 키프로스 변호사는 "30만유로에 유럽에 영주권을" "유럽연합(EU)과 동일한 교육환경" 등을 영어로 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시회 개막식에는 메리 오티스 주중 키프로스 대사가 직접 나와 키프로스 이민 정책을 설명하기도 했다.
베이징에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는 50대의 한 부인은 키프로스 전시관에서 40만유로에 달하는 별장을 계약했다. 일단 부동산회사에 집값의 80%를 지불하고 독일은행에 3만 유로를 예치하는 조건으로 이 부인은 지중해 동부 해안에 3층짜리 별장과 함께 영주권을 획득한 셈이다.
키프로스는 30만유로 이상의 부동산을 구입하면 3개월내에 영구 체류권을 받고 5년이후 이민을 신청할 수 있다. 5년내 6개월만 키프로스에 거주하면 되고 부동산 구입자금의 출처에 대해서는 따로 관리를 하지 않는다.

    일본의 와타나베 부인이 고수익을 찾아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을 누빈다면 개인의 해외투자가 어려운 중국의 왕여사는 부동산 개발업체를 앞세워 마음에 드는 부동산을 찾아 세계를 누빈다. 부동산 투자 가치가 높아진데다 자녀 해외 유학 이민 재산 해외 이전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 투자자들의 해외 상업용 부동산 투자 금액은 38억9000만달러. 전년 동기대비 34%나 급증했다. 지난해 10월 중국 금융당국이 보험사의 해외 부동산 투자를 허가한 만큼 중국의 해외부동산 투자는 올해 대폭 늘어나 것으로 전망된다. 부동산 전문기업 존스랑라셀은 중국의 해외부동산 투자가 연간 5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한다.
중국의 해외부동산 투자는 지역이 다양화되고 상업용에서 주거용으로도 확산되는 등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 호주 등에 집중되던 투자는 유럽을 넘어 한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포브스는 이미 오를 대로 오른 홍콩ㆍ싱가포르의 부동산 큰 손들과 중국의 부자들이 노릴 것은 해외부동산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김여사= 한국에는 1970년대 강남개발시대부터 2000년대 재건축 재개발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부동산 투기로 떼돈을 번 '복부인'들이 있다. 이들과 달리 '김여사'는 주로 40~50대 전업주부나 독신녀들로 평균 3억~5억원대의 금융 자산을 굴리는 중상층 주부들을 통칭한다.
증권사의 투자설명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80% 이상이 주부들이라는 통계도 있다. 이들은 집에서 홈트레이딩시스템(HTS)으로 간편하게 주식에 투자하며 홍콩시장에 상장된 중국 주식이나 미국시장의 상장지수 펀드(ETF) 그리고 아베노믹스 여파로 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엔 선물 투자에도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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